송촌리 불시착, 이로가든 꽃의 오케스트라

꽃과 인연

by mookssam

정원(庭園)의 마에스트로, 꽃으로 쓴 인연의 악보


2020년 6월의 어느 날, 나는 운길산 수종사의 노거수 은행나무를 지나 송촌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송촌리는 남양주시 조안면 북쪽에 자리한 아늑한 전원마을이다. 마을의 오르막길을 따라 송촌초등학교를 지나다 보면, 평범한 시골 풍경 속에서 이질적 이리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소와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로가든'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명품 아웃렛 '더 몰(The Mall)'이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불시착한 듯한 그 대비는, 길 잃은 방랑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알리움과 가우라: 형태의 음률


카페 앞 정원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알리움(Allium)'이라는 꽃을 보았다. 긴 줄기 끝에 둥근 보랏빛 구체를 매달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적막한 대지에 내려앉은 우주선 같았다. 이곳의 꽃들은 정원사의 치밀한 계획과 손길에 따라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과 같았다. 심지어 나물로만 알았던 도라지조차 이곳에서는 고결한 꽃의 주인공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내가 특히 매료된 것은 '가우라(나비바늘꽃)'였다. 가우라는 바람의 결을 가장 예민하게 읽어내는 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우라의 움직임은 정원 전체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음률을 만들어낸다. 마치 바실리 칸딘스키가 음악을 추상적인 선과 색의 형태로 치환했듯이, 이로가든의 정원사는 음악을 꽃의 형상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1]


정원 마에스트로


이곳은 계절 꽃 몇 가지가 아니라 '금주의 꽃'을 볼 수 있는 장인의 가든이다. 주말이면 내려와 일손을 돕는 따님이 입간판에 그 주의 꽃을 세밀하게 그려 놓듯, 정원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심지어 도라지도, 누런 벼도 이 정원 안에서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정원 한 편의 '놀이방'은 식물들의 병원이자 산실이다. 생명을 다한 구근 식물을 건조해 보관했다가 새봄에 다시 심어 생명력을 틔우는 정원사의 손길은 가히 꽃의 장인이라 불릴 만하다.



카페 테이블에는 늘 금주의 꽃 생화가 놓인다. 나는 언제나 제일 풍성한 메인 꽃병이 놓인 자리를 나의 지정석으로 삼았다. 풍성한 우유 거품이 얹힌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정원을 둘러보는 시간은, 최고의 정원사(Master Gardener)가 빚어낸 작품을 향유하는 호사였다. 조안면에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명확한 이유가 생긴 셈이다.



데이릴리: 하루라는 시간의 무게


어느 날, 정원사께서 담장 아래 핀 '데이릴리(Daylily)'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꽃은 딱 하루만 피어 있습니다.'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이 정원의 경이로운 디테일을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다. 데이릴리가 필 때면 나는 매일 그곳에 가야만 했다. 그 찰나의 존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2]


이곳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었다. 공직에서 정원 관련 일을 오래 했던 마에스트로, 테이블과 소품을 직접 만드는 목공 솜씨의 사모님, 그리고 입간판에 꽃의 특징을 남기는 따님까지. 정원에는 그 가족의 정직한 시간과 노동이 퇴적물처럼 쌓여 있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정(情)'은 상실의 긴 터널을 지나온 나에게 가장 따뜻한 '인생의 디저트'가 되어주었다.



걷기가 선물한 복(福)


이로가든이 2021년 산림청 주관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뻐했다. 내가 그곳에서 향유했던 행복과 감사의 순간들이 세상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걷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걷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꽃들, 그리고 걷다가 이어진 인연들은 무너졌던 나의 내면을 다시 세워주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었다.


지금은 비록 조안면을 떠났지만, 이로가든은 여전히 내 마음속 지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존재들과 새로운 인연의 꼴(Form)을 빚어내는 창조적 행위였다. [3] 나는 지금도 가끔 그곳의 카푸치노 한 잔과 정원사의 투박한 손길이 빚어낸 꽃의 오케스트라를 그리워한다.



[1] Wassily Kandinsky, Point and Line to Plane, New York: Dover Publications, 1979, pp. 92-104.

(형태와 색채의 내적 필연성이 자아내는 정신적 리듬에 관하여)


[2]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Tübingen: Max Niemeyer Verlag, 1967, pp. 235-241. (유한한

시간성 내에서 존재자가 갖는 '순간'의 존재론적 의미에 관하여)


[3] Georg Simmel, Soziologie: Untersuchungen über die Formen der Vergesellschaftung, Berlin: Duncker & Humblot, 1908, pp. 12-30.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형태'와 개인의 실존적 관계에 관하여



지난 10여 년간 나는 여덟 번의 상실을 경험했다. 이 글은 그 상실을 지나며 걷고·오르고·타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다시 쓰는 일로 일상의 리듬을 회복해 갔던 시간들을 회고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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