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4] 감각의 언어

형태를 읽는 직관의 탄생

by mookssam

지금까지의 탐구는 인간이 왜 형태(꼴)를 가장 먼저 인식하고, 형태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찾으려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답은 감각이 곧 언어이며, 형태는 그 감각이 사용하는 최초의 문법이라는 결론으로 수렴된다. 종이를 오리고 세우는 놀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근원적인 교훈은 사유(思考)가 뇌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와 친구 희락이)는 2차원 종이를 오려 세워 3차원의 입체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도구는 바로 손(手)이다.


손으로 생각하다: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


손은 단순히 뇌의 지시를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다.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사고는 몸의 감각, 행동,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어린 시절의 종이 오리기와 세우기는 이 체화된 인지의 가장 순수한 출발점이었다. 친구와 나는 종이를 오리고 세울 때, 눈으로만 형태를 인식하지 않는다. 손을 통해 감각적인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압력과 강도

가위를 쥐고 종이를 자를 때의 압력, 혹은 오려낸 종이의 밑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세울 때 손가락의 미세한 압력 조절은 꼴의 견고함과 균형의 섬세함을 몸으로 배우게 한다. 정확하게 오려낸 '선'과 '기울기'만이 구조를 지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손이 먼저 체득하는 것이다.


저항과 균형

우리는 미세하게 비틀린 각도 때문에 발생하는 기울어지는 저항을 손끝으로 느낀다. 손은 균형과 안정성이 무너지는 지점을 언어보다 먼저 파악하고, 직관적으로 수정한다. 형태의 불안정성은 곧바로 몸에 불편한 감각으로 전달된다. '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이런 경험적 피드백을 통해 뇌에 공간 및 기하학적 사고의 신경망을 직접 구축하는 행위이다. 수많은 종이 오리기와 세우기의 실패(추락)와 성공(자립)의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는 '이러한 꼴은 안정적이다', '저러한 꼴은 불안정하다'는 형태의 논리를 언어적 개념을 통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꼴의 지성: 직관과 인지적 효율성

이처럼 손을 통한 형태 조작은 지식 전달의 속도를 계산보다 빠르게 한다. 눈과 손, 그리고 뇌의 완벽한 협응을 통해 감각 → 행동 → 사유의 순환 고리가 완성된다. 묵샘의 삶에서 종이를 오려 세우는 놀이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철학적 시도의 근원이 된 것은, 손이 형태를 빚고, 그 형태가 다시 몸과 마음을 빚는 체화된 인지의 힘 때문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직관은 인간의 인지적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축구공의 깎은 정이십면체가 안정성, 효율성, 그리고 심미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해법이 된 것처럼 [7], 형태적 직관은 가장 빠르고 우아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인간이 형태를 먼저 보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자, 사유의 근간을 이루는 체화된 선험적 틀을 설치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종이 놀이라는 가장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형태 인지의 근원을 탐구했다. 이 경험을 통해 체득된 형태의 직관이 어떻게 시각적 문법으로 확장되고 체계화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원리를 우리는 다음 장「형태 문법의 출발: 게슈탈트」에서 본격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종이로 '형태'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친구 김희락아 진심으로 고맙다. 지금 어떤 삶의 '꼴'을 만들며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 책은 우리가 함께 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함께 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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