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보고, 먹고
두 물이 만나는 경계에서 맛보는 '정리의 미학'
주말이나 휴일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양수리 한 바퀴를 돌았다. 양수철교를 건너 남쪽으로 걷기 시작하면 강의 흐름과 바람의 질감이 미세하게 바뀌는 것을 느낀다. 철교를 지나 한참을 내려가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비로소 하나가 되는 자리, '두물경(兩水景)' 표지석이 있는 양수리의 남쪽 끝단에 닿는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화려한 나루터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지만, 나는 늘 이 외딴 남쪽 지점까지 내려가 두 물줄기가 몸을 섞는 지점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나의 길도 다시 위쪽을 향해 방향을 틀 수 있었다.
두물경을 지나 나루터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에서, 나는 누군가 두고 간 국화 한 다발과 작은 맥주캔 하나를 발견했다. 사랑하는 이를 조용히 추모하며 두고 간 그 마음의 흔적 앞에서 나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누구의 이야기인지, 어떤 이별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앞에 선 나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사람마다 상실의 이유는 제각각 다르겠으나, 그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부재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내 안의 상실을 객관화하고 위로받는 '공감의 시간'이 되었다.
양수대교를 오른쪽에 두고 걷는 보도블록 구간은 차도와 가까워 소란스럽지만, 그 소음을 견디고 나면 황금빛 보리밭이 펼쳐진다. 보리는 매서운 겨울을 견디고 이른 봄 초록의 생명력으로 올라와 5월 말이면 찬란한 황금빛으로 변한다. 길 자체는 늘 같았으나 산의 음영, 강의 결, 하늘의 톤은 매 순간 달랐다. 강 너머의 산도, 흐르는 물도, 내가 딛는 흙길도 단 한 번도 같은 풍경이었던 적이 없었다.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걷기가 주는 철학적 문법이었다.
두물머리에서 출발해 두물경과 나루터, 보리밭을 지나 리노카페에 닿는 약 10km의 여정은 풍경을 탐닉하며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걷기를 마친 뒤, 나는 카페 창가 라운드석에 앉아 운길산의 능선과 북한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마주한다. 나의 선택은 늘 시나몬 향이 감도는 카푸치노와 산 모양을 닮은 몽블랑이다.
카푸치노의 첫맛은 시나몬을 머금은 풍부한 거품이고, 두 번째는 부드러운 우유, 마지막은 에스프레소의 묵직함이 섞인 라테의 맛이다. 이 '세 단계의 변화'는 마치 상실을 겪고, 견디고, 다시 삶과 섞이는 과정과 닮아 있었다. 흰 가루가 눈처럼 내려앉은 몽블랑 빵은 내가 방금 마주한 운길산의 형태와 중첩된다. 운길산을 바라보며 산 모양의 빵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시간과 풍경을 내면으로 수렴하는 일종의 '정리(整理)'였다. 나에게 이 디저트는 몸을 채우는 열량이 아니라, 흩어진 사유를 정돈하는 고요한 마침표였다.
소크라테스의 질문
"두 물줄기가 만나 하나로 흐르듯, 피할 수 없는 상실의 슬픔을 당신은 어떤 일상의 의식을 통해 당신만의 고유한 삶의 형태로 빚어내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