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고등학교 후배로부터 연락을 받으며, 나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내 친구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태였고, 내가 그와 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후배가 대신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나는 그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30년 가까이 모르고 지내왔다.
우리는 그의 집에 가보았다. 그는 50대 초반이었고, 이미 일상생활을 스스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지하에 위치한 방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현관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은 채 열려 있었다. 가전제품과 가구들은 방 안이 아니라 집 밖에 내버려져 있었다. 생활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고모가 간간이 들러 최소한의 돌봄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즉시 동사무소에 연락했다. 담당자는 상황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제도 안에 있지 않았다. 정신과 진료 이력이 일정 기간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¹, 상속으로 받은 재산이 약 2,500만 원 있었으며, 65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공적 지원은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 설명은 규정상 틀리지 않았다. 모든 조건은 기준에 맞지 않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그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분명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제도적으로는 아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공적 복지 제도 바깥에 존재하는 비공식적인 구호 경로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서류를 만들고, 기록을 쌓고, 그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씩 확보해 나갔다. 이 과정에는 거의 1년이 걸렸다. 그제야 그는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만약 누군가가 대신 연락하지 않았다면 이 과정은 시작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세대를 설명하기 위한 사례가 아니다. 당시에는 이 상태를 부를 말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저 개인의 불운이나 예외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이 경험이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중에 ‘1.5세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표현은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름 없이 흘러가던 시간들을 비로소 가리키는 말처럼 느껴졌다.
현행 공공 정신건강 및 복지 연계 제도에서는 일정 기간 이상의 진료·기록이 지원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