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노트, 퇴직에서 업(業)으로 전환

형태에서 철학으로, 다시 삶의 조각으로

by mookssam

2024년 8월 31일. 나는 30년 동안 정들었던 교직을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마침표라 불렀고, 누군가는 이제부터 쉬어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날은 평생을 몸담아온 교육자라는 직(職)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이제 갓 입문한 형태철학자로서 삶의 문턱에 다시 선 날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퇴직(Resignation)과 동시에 또 다른 단어를 떠올립니다. 바로 은퇴(Retirement)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제 현역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여생을 보내라고 말합니다. 마치 삶의 모든 형태(Form)가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그저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직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과연 우리의 일과 인생마저 멈춰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퇴직은 하되, 은퇴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론으로 형태철학을 선택했습니다. 퇴직은 삶의 배경이 바뀌는 사건일 뿐 본질이 변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형태철학자로 살기로 결심한 이유는 나의 뿌리에 있습니다. 디자인 기초조형에서 입체 조형을 다루다 보면, 필연적으로 플라톤(Plato)이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같은 고대의 현자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은 우주의 질서라는 철학적 관념을 먼저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정다면체라는 완벽한 형태를 구축했습니다. 그들에게 형태는 철학의 결과물이자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나의 여정은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 나는 구체적인 사물의 꼴을 만지고, 면과 선의 각도를 조정하며, 재료가 지닌 최적의 형태를 찾아내는 조형의 현장에서 30년을 보냈습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공간의 비례를 고민하며 형태의 정직함을 믿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형태를 빚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나는 역설적으로 그 끝에서 철학의 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철학을 통해 형태를 만들었지만, 나는 형태를 통해 철학에 입문했다.'


이것이 내가 나 자신을 형태철학자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제 갓 입문한 이 길에서, 나는 관념으로 형태를 짐작하지 않습니다. 무너지고 변화하는 시니어의 삶, 그 구체적인 입체물을 직접 깎고 겪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본질을 캐내려 합니다. 30년 교직 생활이 정해진 도면을 가르치는 일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나라는 재료를 가지고 직접 삶의 철학을 조형하는 입문자로서 살아가려 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매달렸던 직(職)은 사실 사회가 빌려준 표준화된 형상에 불과합니다. 퇴직은 바로 그 빌려온 형상을 반납하는 과정입니다. 틀을 벗고 나면 비로소 나의 맨몸, 즉 나의 본질적인 업(業)이 드러납니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이 업을 재발견하고, 나만의 고유한 삶의 꼴을 다시 디자인하는 창조적 작업입니다. 이제까지는 타인이 설계한 도면대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스스로 선을 긋고 면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하루를 조각하고, 변화하는 몸과 감각에 맞춰 일상의 리듬을 재배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제 막 입문을 마친 형태철학자가 당신에게 건네는 초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