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가 되었다는 신호는 드라마처럼 거창하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정적인 순간, 이를테면 병원 대기실 같은 곳에서 예고 없이 도착합니다. 병원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뭉개진 소음들, 사람들의 기침 소리와 발소리가 뒤섞인 공간에서 내 이름이 불립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내 귀에 도착하지 않습니다.
나는 딴생각을 한 것도, 집중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소리의 입자 중 일부가 내 감각의 그물망을 빠져나갔을 뿐입니다. 청력은 골고루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각난 퍼즐처럼 특정 영역만 비어버립니다. 실제로 나는 '시'와 '도'에 해당하는 고음 주파수 영역을 듣지 못합니다. 문장은 들리는데 의미는 한 박자 늦게 도착하고, 말의 시작과 끝이 잘려 나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들리는 소리와 구분되는 소리 사이에 틈이 생겼다는 신호다.'
이 틈 때문에 나는 종종 '못 들은 사람'이 아니라 '잘못 들은 사람'이 됩니다. 남의 이름에 반응해 자리를 옮겼다가 머쓱하게 돌아오는 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감각의 조건이 달라졌음을 알리는 신체의 정직한 보고입니다.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것 또한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의 기준값이 바뀌었기에, 그 꼴을 맞추려는 본능적인 조정일 뿐입니다.
나의 청력 이슈는 젊은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명의를 찾아가고 고가의 소리 발생기를 써보기도 했지만, 기술은 늘 치료와 즐거움 사이의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이명 완화를 위한 백색소음을 들으려면 음악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사용자였고, 그 안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아이폰의 배경 사운드 설정에서 나는 '유레카(Eureka)'를 외쳤습니다. 이명 완화용 백색소음을 배경에 깔고도 음악이나 라디오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기능은 내게 신세계였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각종 이어폰을 테스트했습니다. 완벽하게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보다, 외부 소리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어폰이 내 귀의 부족한 꼴을 메우는 데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훌륭한 음악과 이명을 상쇄하는 백색소음, 그리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집중력을 되찾은 지금의 상태는 단순한 치료가 아닌 '삶의 완화(Mitigation)'입니다. 완화는 후퇴가 아니라 행복의 지수를 높이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귀가 소리의 주파수를 가려내듯, 눈은 빛의 강약을 통해 세상의 꼴을 읽어냅니다. 하지만 이제 나의 눈은 아침저녁으로 경계가 흐릿해지는 침침함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내밀고 있습니다. 형태철학의 문턱에 선 지금은 이를 노화에 따른 기능 저하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던 시절을 지나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선명하게 바라보라'는 신호로 읽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침저녁으로 습관처럼 들여다보던 스마트폰과 인공적인 블루 조명을 멀리해 봅니다. 내 몸이 온전히 깨어나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필요한 정보를 찾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내 몸이 온전히 깨어났을 때 비로소 정보를 찾는 것은, 나만의 고유한 빛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다.'
억지로 시야를 밝히기 위해 강한 빛을 끌어오는 대신, 흐릿한 경계 그 자체를 인정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났을 때 창을 열고 세상을 보는 그 짧은 집중의 시간이, 하루 종일 화면을 들여다보는 무의미한 시선보다 훨씬 더 선명한 나의 꼴을 빚어낼 것이라 믿습니다.
침침한 시야와 들리지 않는 고음역은 나를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내 몸의 꼴을 더 정교하게 다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침저녁의 흐릿한 시선 대신, 내 몸이 온전히 깨어나는 시간을 활용해 근육을 만들고 유지하는 운동에 집중합니다. 내외적으로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매일의 루틴을 조형해 나갑니다.
사실 시니어의 운동은 젊은 날의 그것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나의 목표는 언제나 '완화'와 '유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역설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완화와 유지를 위해 시작한 노력이, 뜻밖의 보강과 개선을 가져다준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현상 유지를 바랐을 뿐인데, 정기적인 피검사 수치가 좋아지고 인바디(InBody) 결과가 근육의 증가를 증명할 때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낍니다. 이는 억지로 시간을 되돌리려 애쓴 결과가 아니라, 달라진 신체 조건에 맞춰 삶의 양식을 새롭게 디자인했기에 얻어진 부산물입니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무너지는 둑을 바라보며 한탄하는 일이 아닙니다. 물길의 흐름을 읽고 제방의 형태를 다시 쌓으며, 그 안에서 최선의 유지를 꾀할 때 생명력은 다시금 차오릅니다. 수치로 증명되는 건강의 회복은, 내 삶의 조형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지표입니다. [4]
[1] Senior: 라틴어 'senex'에서 유래. 영어권에서는 65세 이상의 고령자(Senior citizen)를 뜻함과 동시에, 조직 내에서 가장 풍부한 경험을 가진 상급자(Senior partner)를 의미함. 즉, '쇠퇴'가 아닌 '숙련'의 가치를 내포함.
[2] Third Age (제3의 연령기): 사회학적 생애 주기 중 학습(1기)과 사회적 책임(2기)을 마친 뒤, 자아실현과 본질적인 업(業)에 집중하는 시기. 쇠퇴가 아닌 인생의 조형적 완성도가 높아지는 절정기로 정의됨.
[3] Sage / Saging (현자화): 단순히 나이 드는 'Aging'과 대비되는 개념. 평생의 경험을 조각하여 지혜의 정수를 추출해 가는 과정. 형태철학적으로 '빌려온 도면을 반납하고 나만의 고유한 꼴을 완성해 가는 상태'를 의미함.
[4] Professional Continuity (전문성의 지속):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군처럼 퇴직은 직무의 종료가 아니라 '수행하는 장소와 형태'의 변화일 뿐임. 시니어는 자신의 통찰력(면허)을 가지고 삶의 새로운 작(作)을 시작하는 주체적 설계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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