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만꼴(萬人萬꼴)

시니어는 하나가 아니다

by mookssam

길 위에서 마주한 차이(Distinction)의 풍경


시니어라는 말은 흔히 하나의 얼굴을 가진 것처럼 쓰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그 말은 너무나 많은 사람을 한 번에 묶어 버린 거친 거푸집과 같습니다. 나는 브롬톤 자전거를 타고 국토 종주를 하며, 이 정형화된 틀을 깨부수는 수만 가지의 '꼴'을 길 위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나온 강가와 바닷가에는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는 낚시꾼들이 있었습니다. 길가에 세워진 캠핑카들은 또 어떠합니까. 자신의 손때를 묻혀 아기자기하게 개조한 소박한 차부터, 집 한 채를 옮겨놓은 듯한 럭셔리한 캠핑카까지 즐비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우러나온 고유한 차이(Distinction), 즉 남과 구별되는 저마다의 탁월한 꼴이었습니다.


다리 밑의 독주와 축제장의 합창


어느 한적한 다리 아래를 지날 때면, 콘크리트 벽을 울림통 삼아 울려 퍼지는 색소폰 소리를 듣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완벽한 음색을 찾아가는 그 고독한 독주는 그 자체로 숭고한 자기 조각의 과정입니다.


지역 축제 행사장을 지날 때 만나는 풍경은 더욱 역동적입니다. 라인댄스를 추는 이들, 화음을 맞추는 합창단, 서툰 듯하면서도 진지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시니어 동아리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나이가 아니라 '열정의 상태'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낚시, 캠핑, 색소폰, 그리고 라인댄스. 이 수많은 꼴을 어찌 시니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염려의 자리에 피어난 즐거움


그 수많은 타인의 꼴을 구경하고 배운 뒤, 나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이전의 나에게 노년의 삶이란 막연한 '염려'의 대상이었습니다. 직을 내려놓은 뒤의 공허함, 쇠약해지는 체력, 사회적 단절에 대한 걱정들이 내 삶의 조형물을 어둡게 드리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염려의 자리에 '즐거움'이 들어섰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입어온 '직(職)'이라는 외투를 내려놓고, 비로소 나라는 질료를 정직하게 마주합니다. 이제 내가 집중하는 것은 내 삶의 조형물인 몸의 근육과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입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이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동료, 친구라는 소중한 인연들도 중요하지만, 나를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행복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결국 나 스스로 일궈낸 이 두 근육의 힘입니다.


몸의 근육이 서 있을 힘을 주고, 마음의 근육이 세상을 긍정할 힘을 줄 때, 비로소 남을 의식하지 않고 크게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전에는 노년을 염려하며 조심스레 미소 지었다면, 지금은 나를 찾아가는 이 과정 자체가 즐거워 아이처럼 크게 소리 내어 웃습니다. 이 해방된 웃음이야말로 내 안의 행복 제조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가장 선명한 신호입니다.


매일 땀 흘려 운동하며 몸의 꼴을 유지하고, 브런치를 통해 청소년, 시니어, 그리고 본질인 형태철학이라는 세 가지 질료로 글을 빚습니다. '매일 하나씩 글을 올리는 행위는, 내 삶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본질적인 꼴을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노동이다.'


시니어는 고정된 단계가 아닙니다. 만인만꼴의 세상 속에서 나 또한 매일의 정진을 통해 어제의 생각을 비우고 오늘의 꼴을 새로 빚어냅니다. 나는 오늘도 브런치라는 작업대 앞에 앉아, 나라는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마음에 드는 상태를 향해 한 줄의 선을 긋습니다. 이제 이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내 삶의 가장 큰 부피를 차지했던 '이동의 공간'을 어떻게 줄여나갔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만인만꼴 (萬인萬꼴): 만 명의 시니어가 있다면 그들이 빚어내는 삶의 '꼴' 또한 만 가지라는 의미. '디자인'된 표준형 삶을 벗어나 각자가 조각해 낸 고유한 형상을 긍정하는 표현이다.


[2] 차이 (Distinction): 단순한 차이(Difference)를 넘어, 남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이나 탁월함을 의미한다. 시니어의 삶은 각자의 취향과 경험이 응축된 '디스팅션'의 경연장이다.


[3] 삶의 조형물: 시니어에게 몸의 근육은 생존의 지표이고 마음의 근육은 지혜의 척도다. 이 두 근육을 빚는 과정이 곧 나를 완성하는 형태철학적 삶이다.


[4] 염려에서 즐거움으로: 노년을 쇠퇴의 시기로 보던 수동적 태도(염려)에서, 스스로를 조각해 나가는 능동적 태도(즐거움)로의 철학적 전환을 뜻한다.



Photo by Daniel Re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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