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는 없다

by mookssam

안전한 곳이 따로 있다고

오래 믿어왔다.

집 안, 익숙한 동선,

매일 사용하는 공간들.


하지만

시니어의 생활에는

절대적인 안전지대가 없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환경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다.

다만

몸의 조건이

조용히 달라졌을 뿐이다.


바닥에 내려놓은 물건을

집어 들다가

그대로 주저앉는다.

일상의 동작이

어느 날

사건이 된다.


거실은

가장 익숙한 공간이다.

그래서

방심이 가장 쉽게 생긴다.

늘 문제없이 지나오던 동선이

어느 순간

멈춤의 자리가 된다.


계단도 마찬가지다.

매일 오르내리던 높이지만,

어느 날

헛디딤이 생긴다.

계단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몸과 계단의 관계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욕실과 화장실은

조심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마른 타일도 미끄럽고,

심야의 감각은

낮과 다르다.


미끄럼은

순간이다.

그 다음부터는

몸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때 다치는 곳은

뼈만이 아니다.

허벅지, 대퇴부, 허리,

그리고 회전근계.


근육이 줄고

지탱하는 힘이 약해진 상태에서

충격은

그대로 전달된다.

골밀도가 낮아진 몸은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


그래서

넘어진 직후에는

견딜 만하다고 느껴져도,

통증은

며칠 뒤에 더 분명해지고,

움직임은

점점 제한된다.


이때부터

치료는 길어진다.

안정을 요구하고,

시간을 요구하고,

대부분은

재활을 필요로 한다.


이 시기의 사고는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활 전체의 속도를

다시 조정하게 만든다.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최근 몇 달 사이의 일들이다.

모두

지인들의 이야기다.


문제는

공간이나 시설 그 자체가 아니다.

몸의 조건과 공간이

더 이상 잘 맞지 않는 순간,

그 틈에서

사고는 생긴다.


그래서

어디가 안전한지를 묻기보다,

지금의 몸으로

그 공간을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경륜도 지혜도

정점에 오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판단은 빨라지고,

불필요한 것은 덜어낼 줄 안다.


하지만 동시에

몸은

다른 신호를 보낸다.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온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경륜이나 지혜가 줄어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가장 단단해진 시기에

몸의 변화가 전면에 나타나는 상태다.


그래서

이 시기의 삶은

경험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고,

몸의 조건을 무시한 채

지나갈 수도 없다.


이 장은

안전을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경험의 정점에서

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기록하려는 글이다.



Photo by Mikhail Ni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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