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 순간, 하나.
그날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사실 종종 이렇게 놀란 채로 일어나 휴대폰 시계를 확인한다. 8시 17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모님과 9시 등산을 약속한 상태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늦지 않아 다행이라며 몸을 일으켰다.
계단을 내려가 거수경례하듯 우리만의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옷을 갈아입고 떠날 채비를 했다. 이제는 꽤나 멋진 이름인 히트텍이라 불리는 내복을 입고, 검정 기모 조거 팬츠를 입었다. 검정 상의에 시애틀 공항에서 사 왔던 회색 후드 집업을 걸쳤다. 한동안 안 입었던 민트색 패딩도 함께하며 추위를 대비했다. 현재 내가 소유한 옷 중 가장 따뜻한 것이라 자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생을 위해 떴지만, 동생을 따라가지 못한 손수 짠 목도리를 얼굴과 목에 둘렀다.
장갑을 찾지 못해 맨손으로 출발했다. 혹시 모를 핫팩 하나를 챙겼다. 물을 주머니에 넣고 작은 가방을 걸쳤다. 오랜만에 신는 등산화는 딱딱하고 무거웠다.
산은 꽤나 추웠다. 제아무리 지구 온난화로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이라고 하지만, 추위는 언제나 나를 움츠리게 만든다. 등산 초입, 새로 시작한 유튜브의 주제가 일상기록이기에 영상 업로드를 위해 카메라를 켰다. 앞서 걷는 부모님의 뒷모습이 눈에 담겼다. 흰색 나이키 에어포스를 신고 있는 아버지와 경량 운동화를 신은 어머니. 반면 투박하고 무거워 벌써 발가락이 저려 오는 갈색 등산화를 신은 내가 이상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걷는 발을 찍고 부모님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제야 두 사람이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익숙한 듯 낯선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두 남녀는 그렇게 길을 걸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란히 걸었고, 시간이 지나자 남자가 앞섰고 여자는 뒤처졌다. 그 사이에 내가 있었을 것이고, 난 우리가 되었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힘들면 자신은 정상을 다녀올 테니 중간 지점까지 천천히 올라왔다 내려가라고 말했다. 그러면 다시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자신도 그곳에 도착해 있을 거라며 안심시켰다.
처음 나의 목표는 정상이었지만, 저려 오는 발가락과 발목을 툭툭 치는 신발로 인해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먼저 가던 그는 잠시 우리를 기다리며 하늘 걷기 기구에서 쉬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라며 그는 다시 앞길을 재촉했다. 걷다 보니 그녀는 내 뒤에 있었다. 그처럼 나도 잠시 그녀를 기다렸다. 우리는 중간 지점을 전환점 삼아 되돌아 내려갔다. 입구를 향해 다다랐을 때 뒤를 돌아보니 그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오히려 우리의 속도는 그의 예상보다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둘이었던 우리는 셋이 되었다.
그는 종종 우리를 앞섰지만 다시 돌아오곤 했다. 내가 지켜보지 못했던 그들의 삶도 이러했을까?
미래를 보는 남자와 과거에 얽매인 여자. 남자는 미래를 위해 달리다, 나란히 걷던 그곳에서 여전히 천천히 걷고 있는 그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 돌아왔겠지. 그리고 다시 함께 걷고, 다시 앞서 걷고. 돌아온 그에게 잠시 투정을 부렸던 그녀는 그를 잡지 않고 앞서 걷도록 두었겠지.
돌아올 것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