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으니 작년 여름 어느 날이 떠오른다.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자 얼마 후 갑자기 쏟아붓는 장대비가 차창 너머로 보였다. 소나기겠거니 맘 놓고 있다보니 어느 새 도착역이다. 지하철 출구에는 예보 없는 비에 당황한 사람들이 비가 멎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편의점도 없는 역인데다, 얇은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나오는 바람에 빗속을 뛰어가다가는 즉시 누드와 다름없이 될 것이 분명함으로(모두를 위해) 별 수 없이 기다리자 한 게 벌써 25분째,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뛰면 3초거리인 스타벅스에 들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출구에 우산을 들고 있는 한 젊은 여성에게 조심스레 죄송하지만 혹시 바로 앞 스타벅스까지만 우산을 좀 씌워주실 수 있느냐 공손하게 여쭤보았다. 그러자 그 여성은 ‘오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낯빛을 바꾸고 나를 앙칼지게 노려보더니, 비가 이렇게나 오는데 우산을 왜 안 가지고 외출을 했느냐며 혼잣말도 아닌, 정식으로 나를 쳐다보며 비난하는 것이었다. 초면인 사람에게, 그것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에게 그런 따귀를 맞는 듯한 구박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대화불능 상태임을 빠르게 캐치하고 가볍게 목례한 뒤 나는 한마디도 덧대지 않고 카페로 달렸다. 너무 어이가 없어 반 나체상태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카페에서 블라우스를 훌훌 털며 곱씹어보니, 외부의 모든 것들에게 늘 단단히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몇몇 떠오른다. 내 주변에도 있는 사람들, 나와 가까워서 서로 그냥 용납하고 지내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열어주지 않겠다는 문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나는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가능한 최선을 다해 돕는다. 종종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준다거나, 높은 계단 아래서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든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께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나에게는 해도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하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놓였을 때, 선뜻 나에게 선의를 베푼 사람들에 대한 갚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랬는데 난데없이 이런 구박을 받으니 그런 내 행동이 쓸데없는 오지랖인 듯 싶어 작은 후회도 들었지만 자신이 만들어 둔 결계에 타인을 쉽게 들여보내주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을 그곳에 가둔 것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싶기도 했다.
맞벌이 부모님 아래서 자라온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온 동네가 힘을 모아 공동육아를 하던 시절이었기에, 밥 한번 굶은 적 없었다. 그때는 옆집 아주머니가 흔쾌히 아이를 봐주고, 경비아저씨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안위를 살피는 그런 시대였다. 나와 타인의 경계가 말랑해서 가능했던 시절. 지금 시대에서는 어쩌면 생각도 못할 일들이 그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 사이 많은 사건 사고와, 먹고 살기의 급급함 등으로 인해 마음이 각박해졌을 이유일테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을 불치병 치료제의 발견이라든지, 달나라로의 여행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성에서 나는 더욱 생생하게 느낀다. 지난 삼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 이 경계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조금 울적해지기도 한다.
몇 년전 제주도에 여행간 적이 있었다. 점심까지는 렌트카로 드라이브를 하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기 위해 숙소에 차를 두고 나오곤 했었는데, 한밤 중에는 택시가 다니지 않거나 갑자기 몰아치는 비바람이 불거나 하는 이유로 발이 묶이자 가게 사장님께서 본인 차로 숙소까지 데려다 주신 적이 (무려!)두 번이나 있었다. 관광지 상인들 특유의 가짜 웃음을 짓고 선의를 베푸신 것 같지는 않았다.(적어도 가게 평점을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단지 상냥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하다고 연신 얘기하는 우리에게 사장님 한 분은 “저한테 고향인 곳이라서요, 저도 육지에 갔다가 돌아와서 가게를 시작했거든요. 그런 곳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면 해서요.” 라는 엄청나게 멋진 말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하고는 거친 운전솜씨를 뽐내며 폭포같은 빗길 사이로 사라졌다. 사장님은 차를 태워주셨지만 그 이상의 것을 나눠받은 기분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많겠지만 그 중에 상냥한 마음도 포함하고 싶다.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일본만화 <중쇄를 찍자> 에서 부편집장인 이오키베 케이는 기회가 찾아오는 족족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선행을 베푼다.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쓰러진 간판을 바르게 세워두는 등 별 것 아니지만 너무 별 것이 아니어서 선뜻 하기는 어려운 그런 선행이다. 후배 사원인 주인공이 그에게 왜 그런 선행을 하느냐 묻자 이오키베는 그건 단지 ‘운을 모으는 것’이라고 답한다. 평소에 깨알같이 모아둔 선행으로 미래를 향한 운을 모아 정말 이루고자 하는 일에 그 운을 쓴다는 이야기였다. (이오키베 케이는 본인담당의 만화가 중쇄를 찍는 것에 그 운을 쓰고자 한다.)
버스를 기다리다 땅에 떨어진 사탕껍질을 줍는 나에게 친구는 네가 버린 것도 아닌걸 왜 줍느냐 물었다. 나는 그냥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비 오는 날 비를 맞고 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줄 것이냐고도 물어본다면 나는 그럴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능하면 그날 우산을 씌워주지도 않으면서 모진 구박을 했던 그 젊은 여성이 우산없이 비를 맞는 날을 만나면 좋겠다.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