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l]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

by mool

4.

우리집 강아지는 푸들이다. 푸들은 애교가 많다던데. 아기 때의 우리집 강아지는 스킨십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 번 안아보려고 해도 토끼처럼 폴짝 점프를 해 뒷걸음질 쳤고, 품에 안으면 온갖 발버둥을 쳐서 품을 벗어났다.

그렇게 1년, 2년, 3년, ... 우리집 강아지가 6살이 되었다. 한 3~4살 무렵이었던가? 그때부터 종종 안아도 가만히 있곤 했는데, 20~30초 감동하고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발버둥을 쳐 도망갔다. 그런데 4~5살이 되자 뭔가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별 생각없이 뻗은 팔과 몸 사이로 자연스럽게 비집고들어와 팔베개를 하고 자고, 내 몸통 위에 올라와 잠을 자고, 나를 마주보고 베개를 베고 누워 힘찬 숨을 퐁 퐁 뿜으면서 자기도 한다. 조금 먼 것 같으면 내 발끝에라도 턱을 대고 잔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애교가 없는 남자친구가 갑자기 애교를 보이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그런 시간이 2~3년 지나니 이제는 이 아이의 스킨십이 꽤나 익숙하다. 오늘은 나를 깨워도 모른 척 했더니, 내 몸통 위로 걸어 올라와 그대로 내 가슴팍을 침대삼아 누워 잤다. 그리 작은 강아지가 아닌데. 묵직한 무게감이 이토록 귀여울 줄이야.


내 몸통 위에 길게 누워서, 내가 벤 베개를 벤 채로 퐁 퐁 숨을 내쉬며 잤다. 너의 퐁 퐁 하는 숨소리, 따스한 온기, 마음이 간질간질한 순간들.


종종 어색하긴 한데, 눈물날만큼 좋다.



5.

오피스텔 경비아저씨와의 일화가 생각난다.

우리 건물 경비아저씨는 나를 예뻐하신다. 아저씨라기보다는 할아버지에 가깝긴 한데, 그래도 아저씨라 불러야지. 물론 어떤 날에는 인사를 해도 "네~"하며 지나치셔서 예뻐하는 게 맞나? 아닌가? 싶을 때가 있긴 한데, 아마도 예뻐하시는 것 같다.


에피소드 1)

내가 초보운전일 때, 주차장에서 후진을 하다가 안전바를 들이받았다. ㄷ 자를 엎어둔 모양으로 박혀있던 안전바의 한쪽 기둥이 뽑혀 대롱거렸다. 얼른 주차를 마치고 안전바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 경비아저씨가 달려오셨다.

'혼이 나겠구나...'

아저씨는 내 차에 붙은 [초보운전] 딱지를 보시더니

"음... 자, 오라~이. 오라~이."

하면서 주차 안내를 해주시기 시작했다. 여차저차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끄고 있으니 아저씨가 내가 들이받은 안전바를 감쪽같이 원상복구 해놓으셨다.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있으니 아저씨가

"초보일 때는 조심해야혀~" 하면서 며느리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우리 며느리도 처음에는 운전을 잘 못했는데, 이제는 매일 출퇴근을 잘도 한다면서. 늬앙스가 마치 어린 며느리를 말하듯 하셔서 조금 젊은 새댁인가, 싶었는데 며느리가 교직 40년차의 교장선생님이라 하신다.

그 와중에도 "우리 며느리가, 교장선생님 이거든." 하면서 조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시는데, 그 모습이 참 좋더라.


에피소드 2)

전에 강아지랑 산책을 다녀오는데 멀리서 아저씨가 길을 쓸고 계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는데, 이리 좀 와 보라 하시기에 다가갔더니

"뭐 하러 그리 돌아가~! 여기 건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만 딱 타면은 바로 집 갈 수 있어."

하셨다. 여러 건물의 지하주차장이 연결되어있어, 주차장에서는 각 건물로 출입이 가능했다. 다만 내 카드키로는 내가 사는 오피스텔 입구만 열 수 있는데, 경비아저씨 카드키는 만능이라 여러 동을 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걸어가도 2분 남짓 거리여서 금방인데. 또 산책길이니 햇살을 쬐고 싶기도 했다. 좀 번거롭지 않을까. 그래도 난 아저씨의 마음을 알아챘다. 아저씨는 나에게 빠른 동선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거다. 내게 뭔가 해주시고 싶구나, 도움을 주고 싶으시구나.


"오... 네!"

하고 얼른 따라나섰다.


다만 하필이면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것을 깜빡해서, B1 버튼을 누르려 했을 때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각기 원하는 층을 누른 뒤였다. 여러 층을 오고간 후에야 지하 층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각 층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머쓱해하셨다. 나에게 빨리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호언장담 하셨는데, 더 늦게 도착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냥 건물을 돌아 걸어왔다면 금방 도착하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근데 뭐, 몇 분 빨리 집에 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나는 아저씨의 마음을 받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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