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낸다고 끝이 아닌 관계에 대하여
사람과 도시에 지칠 때면 산소호흡기처럼 찾게 되는 동네 동산. 늘 같은 자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이 오늘은 왜인지 정감이 간다.
서울에서의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가졌던 모든 사랑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높은 건물들로 가득한 이 도시가 내 인생이 담긴 따뜻하고 익숙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가족과 오랜 친구들이 있는 진주와 나의 20대로 가득 찬 도쿄, 따뜻한 햇볕과 바다, 석양,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 준 캘리포니아. 그 어느 도시보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을 나는 사랑하는 것 같다.
- 나는 지금의 나와 내 삶을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한다.
최근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마주하고 소화하기 겁이 난다는 이유로,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고 몸을 혹사시켰다. 몸이 힘든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내 나름의 회피 전략도 금요일 저녁 즈음부터 지금까지 억눌렀던 감정들이 삐져나오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오늘은 더 이상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간을 내어 상담을 다녀왔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과 이해받고 싶었던 것, 상처받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결핍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린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장난처럼 얘기하던 그와 최근 이별했다.
신기하게도 정말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닮은 점이 있었다. 어쩌면 꽤 많았다. 나에게 있어 그는 보듬어주고 싶은 나 자신이었고, 내가 그에게 기대하고 바라던 것은 내가 스스로 채웠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받길 원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지금에서, 모든 인간의 가장 큰 소망은 이해받는 것이라는 정신분석학자 누군가의 얘기가 떠올랐다. 못나고 미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 조금 해소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서관에서 [모멸감, 끝낸다고 끝이 아닌 관계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첫 부분에서 마주한 이 표가, 이별의 트리거가 되었던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과 그 감정의 파도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도식화해 놓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허무감이 느껴졌다. 내 마음의 어떤 곳이 건드려졌던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것도 같았다.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고 그저 사랑하고 행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관계. 하지만 끝낸다고 끝이 아닌 관계. 아직 혼자 남아서 이해해야 할 것과, 정리하고 소화해야 하는 감정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그저 묻어두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려고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어른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