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상초 때 헤어진 사람의 기억 2
계절과 함께 바뀌는 관계
*1편과 이어집니다! 제 동기가 겪었던 이별이야기 두 번째입니다.
자대배치 이후로 나는 지옥을 맛봤다. 세탁기도 못쓰며, 부조리부터 마음대로 물건도 살 수 없었다. 인사도 꼬박꼬박 안 하면 그저 험담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견뎠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라고 자기 암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 대한 울분은 계속 쌓여갔다.
반면 내 동기는 정말 멀쩡해 보였다. 마치 적응을 못하는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주변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사회성도 넘쳐나고, 실행력도 좋은 그가 빛나보였다. 특히 그를 지탱해 주는 여자친구는 언제나 훈련소처럼 사이좋게 대화를 나눴다.
가을이 되었다. 날은 추워지고 낙엽이 떨어졌다. 서서히 선임들이 가르친 군대의 부조리가 몸에 녹을 무렵이었다. 근무 중 한 소문을 들었다. 동기가 옆 부서 선임과 말다툼이 있었다는 소리를. 나는 그럴 리가 없다며 근거 없는 소문을 무시했다. 그는 언제나 부대에서 사회성 좋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누군가 전화기를 들고 윽박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읽던 책을 놓고 바깥을 살펴봤다. 내 눈에는 계단에 몸을 기댄 동기가 보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그녀와 전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나 너무 힘들어. 너의 고충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고!"
그의 소리는 허공에 퍼졌다. 들은 것은 전화기 너머의 그녀와 몰래 훔쳐보고 있는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 그도 군대 생활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겉으로는 잘 지내지만, 울분이 쌓인 것은 나와 똑같았겠지. 한편으로는 그녀를 향한 동정심이 생겼다. 남자친구와 훈련소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를 해보려다가 다짜고짜 화내는 남자친구에게 얼마나 실망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더니 어느새 전화는 끊겼다. 내 동기는 길에 있던 돌을 보더니, 철창을 향해 걷어찼다. 그리고 씩씩대는 소리와 함께 그는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아 떨어지는 낙엽을 멍하니 바라봤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두 사람의 사이도 쌀쌀해졌음을 느꼈다.
훈련소에서는 끔찍이도 사랑했던 두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말싸움만 하던 사이가 됐을까. 그저 두 사람을 가른 국방부가, 군대가, 이 부대가 원망스러웠다. 일병은 서서히 끝나가고 상병이 되는 시기가 오려고 했다. 두 사람의 싸움이 원만히 해결되길 기도하고, 나도 다시 책을 읽으러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