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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an 16. 2024

실패한 과거에 사는 사람… 호더에 대하여

일종의 강박일까, 마음의 위안일까

 호딩(hoarding)은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사거나 주워와 집안 가득 축적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호딩을 하는 사람을 즉 호더(hoarder)라고 한다. 유년기 시절을 떠올려보자면 우리 집은 항상 물건에 치일 정도로 집안 가득 빼곡하게 물건이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남보다 강했고 길을 지나치며 보이는 온갖 쓸모 있어 보이는 물건들을 번번이 주워 오셨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사용이 다했거나, 고쳐서 사용해야 했거나, 특별히 우리 집에 필요한 물건들이 아니었는데 매번 아버지의 눈에는 그것들이 보물 찾기에서 발견한 보물쯤 되는 듯싶었다. 


남이 버린 책상, 바퀴가 고장 난 책상의자, 서랍장, 장롱, 책, 선풍기, 액자, 조화, 신발, 옷, 반찬통, 국그릇과 접시 등등… 아파트 분리수거장 앞에 누군가 내다 버린 물건들은 아버지의 레이더망에 걸리면 즉시 우리 집으로 옮겨져 왔고 물건의 가치가 있든 없든 그것들이 쓸모 있어 보이는 모양새 정도라면 기준에 부합되어 우리 집 베란다에 차곡차곡 모여 쌓여만 갔다. 아버지의 모아두는 행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때론 헌 옷 수거함에 버린 옷들 또는 헌 옷 수거함 안에 넣지 못한 보따리에 쌓여 있는 옷들까지도 집으로 가져오곤 하셨는데 어린 나와 언니가 입지 못하는 옷들은 교회로 가져다주시고 치수가 얼추 맞는 옷들은 챙겨 두었다 입히곤 하셨다. 


#1

물건이 너무 많아서, 집에 짐이 많아져서 오는 고충은 꽤나 많았는데 예로 신발장에 신발을 신으려고 하면 신발장 가득 신들이 다 나와있어서 제 짝을 찾아 신으려면 먼저 나와 있는 신발들을 밟고 신발을 신어야 했고, 어쩌다 꽤 괜찮은 신발을 주워 오거나 정말 가끔이지만 신발을 새로 사면 신발 수납장 속 가득히 놓여 있던 신발들 위에 또 새로운 신발들을 켜켜이 겹쳐 놓는 형태로 사용했다. 사람은 셋이었는데 우리 집 신발장은 족히 보아도 서른 켤레 이상의 신발들이 빼곡했었다. 


거실 겸 주방을 가보면 식기도구들 역시 산을 이루고 있었는데 사용하지 않지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접시, 밥그릇, 국그릇은 싱크대에 가득했고 사용하고 있는 식기류는 싱크대에 들어가지 못한 채 싱크대 선반과 건조대에 차곡차곡 쌓여서 보관되며 사용되었다. 주방 싱크대 하부 서랍장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는데 냄비와 팬, 곰솥 등이 꽉 차서 문을 닫아도 제대로 체 닫히지 않는 형태가 되었다. 


이곳에서 아버지는 불편하지 않게 음식을 만드셨다. 반쯤 덜 닫히는 수납장도, 냉동실 빼곡히 차 있는 검은 봉지의 정체도,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알 수 없는 음식들까지도 우리는 그것들로 하여금 불편하지 않았다. 익숙해졌기에 불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2

저장 강박이란 버리거나 처분하는 일 없이 계속 쌓아두기만 하는 증세를 말한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물건들은 계속 쌓이고 쌓이다 정작 사람은 누울 자리조차 없이 물건들로 빼곡히 채워져서 방의 경계도 모르겠고, 출입문도 짐에 막히게 되고 짐을 타고 넘고 건너가야 하는 형태를 저장 강박이 심한 사례의 환경이라고 말한다. 근래에는 이렇게 짐에 잔뜩 둘러 쌓인 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잇대가 지긋하신 분들만이 아니라 젊은 층들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이는 우울증이 호딩의 주요 원인인데 평소 상태가 기분이 좋지 않고, 감정적이며, 자존감도 낮은 사람들이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로 하여금 물건을 통해 위안을 느끼고 물건을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행동을 어떤 물건에 담긴 행복한 추억이 물건을 버리는 것과 동시에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저 물건을 물건으로 보지 않고 물건으로 하여금 마음의 빈방을 가득 메꾸고 채우고 그것들로 위안을 삼는다는 것이다. 


#3

물건의 적정 수준을 한참 넘긴 물건, 물건의 쓰임을 다한 물건, 그렇지만 버리기엔 꽤 아까운 물건, 언제 쓰일지 모르겠지만 나눔을 하긴 애매하고 버리고는 싶지 않은 물건, 부피가 커서 버리기도 어렵고 까다로운 물건, 왜 이런 물건을 들였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희한한 물건, 사놓고 내게 맞지 않아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새 물건, 아니 헌 게 돼버린 물건, 지저분하고 손때가 가득해서 버려도 충분한 물건이지만 버리면 또 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두고 쓰게 되는 물건, 볼 때마다 괜히 샀다 싶은데 버리면 안 될 것만 같은 마음에 계속 집에 상주하고 있는 죄책감의 물건, 앞으로 몇 년이 흘러도 절대로 안 쓰일 내겐 정말 필요하지 않지만 그냥 우리 집에 들어왔으니 버리고 싶지 않은 물건. 누군가 버렸기에 주워왔는데 정작 쓸데가 없는 물건임을 인지했지만 버리는 비용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 주워올 땐 심봤다 하고 좋았는데 막상 집에서 전기선을 연결하니 작동이 되지 못하는 물건인데 귀찮아서 안 버리게 된 물건 등등…


#4

이렇듯 버리기를 못하는 사람은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버리지 않게 된 사연이 각각 있는 물건들을 집 안에 그대로 놓은 체 생활하곤 한다. 이 마음을 가장 먼저 알게 된 나로서는 '나는 짐에 치여서 살지 않을 거야.'라고 했지만 정작 난 아버지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성인이 되면서부터 내가 갖게 되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이란 생각에 버리기를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좋은 말로 '맥시멀리스트', 나쁜 말로 '호더'가 바로 나였다.


#4

시간이 지나 아버지와 따로 나와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다시 새 보금자리에 와서 생활했지만 나 역시 유년기 시절에 짐이 가득한 집처럼 우리 집도 제법 꽤 많은 짐에 둘러 쌓여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짐을 내가 갖고 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추억이 깃든 물건들 대다수는 소유하며 살고 있었고 이런 강박행위는 적정 수준을 넘긴 물건들로 하여금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물건을 계속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로 둘러 쌓이는 일. 이런 행위는 답답함과 동시에 물건에 대한 죄책감 역시 든다. 청소할 때마다 방마다 늘어진 짐을 들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식탁 위 가득한 아이들의 가정 통신문, 작품 활동, 과자봉지, 커피봉지, 물티슈, 휴지, 영수증, 방향제, 물통과 물컵, 견과류 등등 물건들로 빼곡할 때면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는데, 이때의 장면이 어릴 때 아버지와 살았던 집이 생각나 또 한 번 뒤집어엎고 치우고를 반복했지만 어느샌가 또다시 쌓이는 짐들이 야속했다. 


그냥 그때그때마다 치우면 되는 것을 나는 쌓이기까지 기다렸다 치우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언젠가 필요하겠지란 생각으로 여유분을 조금 더 구입해서 물건이 다시 쌓이곤 했다. 그리고 그런 강박은 미니멀리스트 관련 책들을 열 권 정도 소유하게 됐을 즈음 그쳐졌다. 나는 더 이상 물건을 사모으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물건을 소유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마음의 허기를 짐으로 채워낼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5

아버지의 집을 방문하면 전보다는 짐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짐이 많다. 결혼의 실패가 만들어 낸 불행과 우울의 늪에서 아버지의 짐은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늘어났던 것으로 유추해 본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 혼자서 어린 딸들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아버지의 삶 역시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선택에 있어 다소 아쉬운 마음은 크다. 재혼으로 인한 우리 자식들의 환경이 많이 달라졌던 때를 생각하면, 결국 국제결혼은 득 보단 실이 더 큰 선택이었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6

저장강박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심리적, 정서적, 인성적, 생리적 요인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건에 대한 강한 애착, 소유물에 대한 책임의식 또는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두려움, 공허하고 불안한 감정상태, 외로움을 물건을 모으는 행위로 완화시키는 일, 회피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산만하거나 때론 결정을 내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상태, 유전적 또는 뇌 기능 이상, 판단력 저하 등 신체적인 문제로 발현된 증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자발적으로 좋아지지는 않고 병원에 내원해서 우울증과 불안증에 대한 부분을 안정화시키는 형태로 치료를 받거나 물건을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건 가족 또는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의 이해와 지지라는 것이다.


#7

사실 나 역시 우리 집에 누군가가 오는 게 싫었고, 아버지 역시 물건이 꽉 찬 집에서는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한 번도 드릴 수가 없었다. 만약 나와 아버지 같이 주변인이 이런 증상을 갖고 있거나, 증상이 꽤나 진전이 되어 많은 물건에 둘러 쌓여 일상이 곤란할 정도가 되었다면 누구든 이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이들은 집에 가득 쌓인 물건들로 불편하지만 알 수 없는 공허를 채우기 위한 버리지 않고 쌓고 모으는 행위들로 인해 스스로가 고립되었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를 알아채고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한다. 


저장 강박증, 우울증은 인간관계에 실패하거나 본인의 죄책감으로 빚어진 증상이기도 하다. 비난하거나 물건 버리기를 재촉하기보단 그들이 원하는 필요가 무엇인지 헤아려 주고 그들이 물건으로 인한 안정감을 찾기보다 사람에 대한 정과 두터운 신뢰로 인해 다시금 회복할 수 있게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 여러분에게 의미가 깊은 물건들은 어떤 것인가요? 이 중 꼭 버려야만 한다고 한다면 어떤 걸 남기실 건가요?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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