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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전하는고양이 Sep 18. 2024

버스를 좋아하세요?

서서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스며들다.


내게도 매일매일 버스를 탔던 시절이 있다. 


전날의 피로가 내 몸 어딘가에 흐리지만 분명히 남아있고, 눈 역시 반밖에 안 뜨이는 아침 출근길을 매일 같이 반복했던 그때. 그래도 난 그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어서 행복했다. 




"WELL COME TO HELL."




버스를 좋아하지만 난 아침마다 그에게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너처럼 지옥 같은 출근길 메이트는 없을 거야'라고. 애증의 출근길 메이트에게 마치 '지킬'인지 '하이드'인지 모를 두 얼굴을 보여주며 다니길 2~3년. 이불속에 구겨진 몸을 단 15분만 빨리 펼쳐도, 여유롭게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나는 '버스' 이 녀석을 더욱 좋아하게 됐다. 


많이들 알겠지만, 출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비슷하다. 무기력하게 계속 꺼지는 알람 그리고 ‘아 5분만’을 3~4번 정도 반복하다가, 더 이상 미룰 여유가 없는 정점의 시간 대 '콩나물시루' 버스에 몸을 태우고 결국은 콩나물 1, 2, 3이 되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 그렇게 의지와 무관하게 콩나물 1, 2, 3이 된 직장인들은 아침부터 입과 머리로 험한 말, 험한 생각을 하며 적잖은 분노가 더해진 아침을 맞이한다는 정말 눈물 없이 못 들을 이야기. 우리네 '출근길 사람들'의 아침이다.





'15분' 서둘러 만난 버스는 나름 고요해서 하루의 시작을 맡기는 데 더할 나위 없다.




“안녕하세요.” 기사님께 인사를 드린 나는 눈으로 버스 안을 빠르게 스캔한다. 바퀴가 있는 자리. 무릎이 우뚝 솟게 되는 조금은 불편한 자리. 사람들이 꺼리는 자리지만 난 그 자리가 좋았다. 앞바퀴, 뒷바퀴인지는 상관없다. 속으로 ‘영차’ 소리를 내고 계단 2개 정도를 오르듯 발을 떼고 앉아 바로 벽에 기대어 창밖을 본다. 눈은 창밖에 움직이는 풍경을 따라다니고, 마치 자아가 분리된 것처럼 손은 가방 안을 분주하게 휘저으며 이어폰을 찾는다. 마침내 원하던 이어폰이 손에 쥐어지면 곧바로 가방에서 꺼내 귀에 꽂고 이어폰에서 귀로 넘어오는 노래를 받아들이며 입으로 흥얼거린다.


내 주위에 사람이 없어 눈치 볼 필요 없이 창문을 살짝 열 수 있다면, 그날은 더 좋은 날이다. 달리는 버스와 유유히 떠다니는 공기가 만나서 이는 바람. 그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와 얼굴에 닿을 때,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서서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스며들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차곡차곡 쌓인 좋은 날들의 느낌을 잊지 못해 버스를 안 타도 되는 지금도 가끔 버스를 찾는다. 차고지에서 반대 차고지까지 하염없이 바람을 맞고, 창밖을 보며, 블루투스 이어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스레 줄이 엉켜있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흥얼거리는 여행. 


아마 난 '버스' 너를 영원히 끊어내지 못하겠지. 버스, 네가 참 좋아. 당신도 버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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