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한량 Aug 23. 2019

꽃게...보고 싶어요...

그립습니다. 당신이,

"아이고 뭐하러 와 멀게 시리"

"안 와도 된다니까 그래도"

"거참 오지 말라니까"


마치 드라마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단어만 달랐지 항상 비슷한 맥락의 말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상황에서 나를 마주해 주었다.


마을 회관을 지나 마을 초입에 다다르면 보이는 집안 마당에,

현관문 앞에 작은 의자를 두고 저 멀리 서울에서 출발한다는 나를 기다리는 모습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첫 모습은 언제나 그러했으니까,



어린 나를 기다려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색함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할머니를 마주하는 나는 엄마 뒤에 숨어 작은 목소리로 그녀와 마주했다.


그런 내가 익숙하다는 듯, 언제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여 들어와 밥 안 먹었지? 길은 안 막혔고? 오느라 고생들 했다"


언제나 그랬다. 우리 가족과 마주하자마자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안부를 묻고는 밥을 먹자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 또한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몰론, 나의 알 수 없는 어색함 또한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항상 그대로였던 것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먼 거리를 이동한 몸을 달래주던 것은

시골집 특유의 향과 어우러져 나에게 다가온


할머니의 꽃게탕이었다.



구수한 된장과 달큰한 고추장이 바다 내음을 품은 꽃게와 어우러져

풍기는 그 향은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고,

비로소 할머니의 품 안에 무사히 안겼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곳에 가면 항상 할머니가 있었고, 꽃게탕이 있었다.


지금이야 2시간이면 가지만 어린 시절 시골은 너무나 먼길이었다.

고속도로도 없었기에 때로는 1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먼길을 다다라 도착한 그곳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있었고

꽃게탕이 있었다.


따끈한 밥에 걸쭉한 국물의 꽃게탕을 먹고 있으면

무심한 듯 몸을 반쯤 돌리고 앉아 어색하게 시선만 나에게 던지고 있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너무 맛있어요~ 역시 꽃게탕은 할머니께 최고예요~"라며

꽃게 다리 한쪽을 들고 쪽쪽 빨고 있다 보면

그제야 안심이 되셨는지 나에게 다가와


"그래 맛있으면 됐다. 많이 먹어라"며 무심히 한마디를 던지시고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꽃게탕에 들어 있는 꽃게를 다 먹을 때까지,

다시 무심한 듯 몸을 반쯤 돌리고 앉아 어색하게 시선만 나에게 던지셨다.


그렇게 어린 내가 꽃게탕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말없이 내 옆에 계셔 주셨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고 군대에 다녀와서도

할머니는 언제나 그곳에 계셨고, 할머니의 꽃게탕도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대로 일 줄 알았다.


바다내음 가득한 시골 마을도 그대로고,

내 아버지가 태어나고 내가 뛰어놀던 시골집도 그대로지만,

할머니의 꽃게탕만이 그곳에서 자취를 감췄다.


가끔 엄마가 끓여준 꽃게탕을 먹을 때마다 그런 말들을 한다.


"이것도 맛있는데 꽃게탕은 할머니가 만든 게 최고였는데...

여기저기 다니며 꽃게탕을 아무리 먹어도 그 맛이 안나..."


내 말을 들은 어머니의 반응 또한 늘 한결같다.


"아들 네가 할머니 집에서 먹은 꽃게탕의 반이상은 엄마가 만든 거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가족이 시골에 가면 첫 식사를 빼고는 대부분을 엄마가 준비를 했으니까,

첫 식사에서 먹은 꽃게탕이 아닌 다른 꽃게탕은 할머니가 아닌 엄마의 솜씨였으리라.


그래도 내가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은,

지금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언제까지나 추억할 음식은,


할머니의 꽃게탕이다.


알이 가득가득하고 살이 꽉 찬 된장으로 끓인 꽃게탕의 짠내는

바닷가에 있던 시골집의 향기와 닮아 있었고,

할머니에게서 나던 노인 특유의 체취와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난 시골집에서 먹는 꽃게탕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난 시골집에서 먹는 할머니의 꽃게탕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난 꽃게를 볼 때마다, 꽃게탕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가 그리운지도 모른다.



나에게 꽃게탕은 가장 행복한 기억을 담은 음식이자,

가장 그리운 음식이다.

그래서인지 너무 좋아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혹여나 꽃게를 보며, 꽃게탕의 향을 맡으면 시골집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질까...그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까 두려워...


그래도 먼 곳에서 막내 손주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바라보고 계실 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꽃게탕의 기억이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그립다.


*위 이미지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에 있던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로 100프로 창작물이 아님을 알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호날두 vs 관중 존중은 없었다. 팀K리그 v 유벤투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