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문을 나서며 프로처럼 명찰을 분리하던 그리운 나의 사수
퇴근을 하다 보면 여전히 목에 회사 명찰을 달고 지하철을 오가는 사람을 본다.
단순히 깜빡 잊은 걸까.
아니면 회사의 로고가 적힌 목걸이에 으쓱하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걸까.
사수는 근무를 하는 중간에도 회사의 정문을 나설 때면 정장 상의 주머니에 붙어있던 쇠명찰을 탁하고 때어냈다.
그 시절 점돌이들은 퇴근은 물론,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에, 약국을 나가는 잠깐 사이에도 점포 문을 나서며 명찰을 떼는 것이 대체로 모두의 습관이었다. 그중에도 문을 빠져나오는 바로 그 순간에, 12시에 시침과 분침이 떡 겹치는 그 절묘한 타이밍같이 사수는 명찰을 너무 딱 맞춰 자기에게서 분리했다. 나는 붙은 명찰을 탁 하고 떼어내는 사수의 완벽한 타이밍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따라 했지만, 엇박자처럼 자주 늦었다.
난 그것이 그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대표하는 명찰이니까. 명찰을 차고 있으면 그동안은 내가 이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회사 밖에선 담배를 필 수도, 편히 말할 수도 있으니, 회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가 명찰을 잊지 않고 떼는 것이라고. 회사 안에서 명찰을 달고 있는 동안에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회사 밖에선 명찰을 떼는 형태로 회사에 어떤 잡음도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라고.
사수는 퇴근을 하면서는 명찰을 책상 귀퉁이에 놓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시절 나에게는 그 모습 또한 너무 멋진 프로처럼 보였다.
왜냐면 그는 자주 내게 말했으니깐.
퇴근하면서는 회사 생각하지 마.
회사에선 명찰을 탁 하고 붙이고, 회사 문을 나서면 착 하고 떼는 그를 보고 배웠으니, 나도 퇴근하며 명찰을 목에서 빼내어 가방 구석에 바로 넣어둔다. 이제는 자석으로 붙이는 쇠명찰이 아니라,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같이 긴 줄로 된 목걸이 명찰을.
그렇게 지하철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탁 찍으면, 나는 이제 문주임도 문대리도 문과장도 문책임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회사가 나에게 준 직책도 명함도 연차도 사번도 버리고 나면, 난 지하철 안 동그랗게 축 처진 어깨를 한 샐러리맨들 중 하나, 고단한 이들 중 하나.
남편과 아빠와 엄마가 생각나는 터덜 걸음을 걸으며 오늘 하루를 떠올린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일희일비하며 열을 내었나. 나처럼 동그란 어깨로 퇴근을 할 이들에게 화를, 아쉬운 소리를 아이같이 퍼부었나. 못난이 같았던 오늘의 순간이 후회로 밀려온다.
회사 밖과 회사 안을 잘 분리하는 사수의 스트레스 관리 내공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일 년 반 만에 본사로 발령이 나며 내 곁을 떠났다.
오늘 퇴근길에도 습관처럼 나는 명찰을 가방에 쏙 넣으며 맞은편에 걸어오는 아가씨의 목에 걸린 명찰을 본다.
어느덧 11년 차, 명찰을 넣고 집 앞 지하철역의 개찰구를 지나며 회사에서의 오늘을 내려놓는다.
사수에게 배울새 없어 아쉬웠지만, 결국은 시간이 가르치는 것들.
퇴근하며 회사 생각 내려놓기.
시간이 지나며 나도 모르게 자라 있는 부분들.
오늘 하루를 못난이처럼 군것 같아도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잘 자라고 있다고, 잘했다고 말해주는 사수가 더 이상 없으니까
오늘은 내가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기로 한다.
지난 십 년 잘 버텼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못난 모습으로도 그래도 잘 해내고 있다.
(2020년 7월 퇴근길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