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좋아질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요!"
오늘은 퇴근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옆 팀의 신입사원 친구를 만났다. 아마 작년 초에 우리 팀에서 인턴을 했으니 이제 입사하고 한 8개월쯤 되었겠지.
인턴을 할 때에 있던 생기와 군기, 반짝이는 눈동자가 입사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그저 순리 같은 일이다. 나도 그랬듯이.
그런데 그 친구는 볼 때마다 유난히 젖은 솜처럼 몸과 기운이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랄까. 혼자 밥을 먹으러 가는 길도 많고, 유독 눈길이 갔는데 그래서 나는 마주칠 때마다
요즘은 어때? 괜찮아? 일은 잘하고 있어? 하고 묻고
그 친구는
네, 괜찮아요- 하고 대답을 하는 장면이 늘 반복인데
오늘은 어쩐 일로 그 친구가 다른 대답을 했다.
아, 네- 혼자 열심히 해보려 하고 있어요-
왜 혼자 열심히 해?
일을 가르쳐주실 선배들이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이런 대화가 잠시 오고 간 끝에 그 친구는 내가 해주려던 말을 스스로 했는데, 그 말은 이랬다
점점 좋아질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요!
나는 그 친구의 대답에 문득 십 년 전 병호 과장님이 생각났다.
신입사원 당시 내 근무 현장은 1층, 사무실은 3층
과장님의 현장은 3층, 사무실은 4층
1층 근무를 마치고, 터덜터덜 3층 사무실에 가는 길에 우리는 곧잘 마주치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과장님이 물으셨다.
요즘은 어떠니, 하고.
호랑이처럼 무서운 얼굴이었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정한 표정으로 오늘은 어떠니, 하고 물으시면 나는 신입사원의 열정과 패기를 연기할 새도 없이 곧바로 솔직해졌다.
어떤 날은 매우 생기 있는 표정으로
요즘은 재미있어요, 하고 말했고 그럴 때면 과장님은 다시
무엇이 재밌니, 하고 물으셨다.
어떤 날은 지친 얼굴로
요즘은 재미가 없어요. 하고도 자주 말했는데, 그럴 때면 과장님은 다시
무엇이 힘드니, 하고 물으셨다.
맞지 않는 새로운 상사와의 트러블, 풀리지 않는 협력사와의 갈등, 강도가 높은 강성 고객의 클레임, 호기롭게 준비한 행사 기획안을 주절주절 말하고는 했는데, 과장님이 나와 같은 부서도 아니고, 직속 상급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무턱대고 자주 솔직해졌다.
요즘은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정기적으로 듣고, 꾸준히 대답하는 것이 일상의 한 장면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과장님의 물음에 답하면서, 요즘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인식하며 지냈구나 싶다.
아, 오늘 나는 신이 났었구나, 오늘 나는 이런 일로 기분이 안 좋았구나.
주절주절 답을 하다 보면 내 감정의 상태와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었다.
물론 해결책을 찾지 못해 허덕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서 오늘 그 친구의 대답에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채 외롭게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던 그 친구도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고, 묵묵히 걸어 나가고 있구나, 하고.
그러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점점 좋아지기 마련이니까.
당연히 너도, 그리고 나도
점점 좋아지면 좋겠다.
이번 한주도 그렇게 믿고 가보자.
(2020년 1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