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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인선 Moon In Sun Aug 07. 2020

난 십 년 전에 어땠어? 멋있었어?

나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같았어?




오빠,

나는 스물여섯에 어땠어?

난 그때 어떻게 보였어?

어떤 사람이었어?


이 질문을 최근 3-4년 동안 안 해보고 산 것 같아.


나는 늘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했다?

남들이 나를 밝고 씩씩한 사람으로 보기를,

늘 내게 호감을 느끼고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라며 행동했었어.

내 인생은 특별하다, 보다는

내 인생이 특별해 보이기를 바랐어, 남들 눈에.


그런데

남편을 만나서 연애하고부터는 그런 생각이 점점 옅어지더니,

남들에게 바라는 마음 같은 것이 점점 작아졌어.

내가 애쓰지 않아도

어떻게 보이려고 의도를 갖고 노력하지 않아도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힘쓰지 않아도

나를 가만히 예뻐해 주는

내게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때부터

그게 안 궁금했다?

그렇게 서른부터 지금까지 남들 눈 덜 신경 쓰며 맘 편하게 잘 살아오고 있는 것 같아.



근데 문득 궁금하네.


오빠를 오랜만에 보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궁금해졌어.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여섯 십 년 전,

회사에서 만난 입사동기인 오빠.

그래도 일 년에 두세 번은 꾸준히 만나서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기만 했던 오빠가

먼저 이직을 하고, 퇴사를 하고, 최근 사업을 한다고 선언했잖아.

최근 오빠 모습이,

오빠의 지난 10년이 너무 멋져 보여서

조금 위축이 되었나 봐.


난 십 년째 한 회사에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데

일도 그림도 글도 

심지어 요가마저도 이렇게 제자리걸음인데,

오빠가 성큼성큼 걸어서 저 앞에 엄청 큰 나무처럼 보이는 거 있지.


그래서 묻고 싶었나 봐.


난 십 년 전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때와 나는 어떻게 달라져왔을까,

내 십 년의 시간을

내가 허비하지 않고 잘 써온 걸까?

나는 그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니다.

묻고 싶은 게 아니라,

이런 대답을 듣고 싶었었던 것 같아.



인선아,

너 십 년 전에 멋있었지.

너 다른 애들보다 넘치는 에너지가 유독 눈에 띄었지.

너 그때 멋있었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보였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너는 멋있어.

일도 그림도 글도 너는 여전히 꾸준히 해내고 있잖아.

너 지금도 멋있어.

이런 위로가 듣고 싶었나 봐.



나 요즘 지난 내 십 년이 괜찮았나.

너무 회사생활에 취해 있던 게 아닐까.

회사가 내게 주는 월급에, 명함에, 직위에 마약같이 취해서

정작 내가 열정을 쏟아야 할 다른 것을 놓치고 산 게 아닐까.

이런 생각에 한참 우울했거든.


근데, 차마 못 물었지.

또 웃고 떠드느라.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예전 같으면 또 십 년 전 신입사원 수련회, 리프레시 휴가, 어이없는 에피소드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며 한바탕 웃고 왔을 텐데.

오빠 사업 전까지 고생한 일, 또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공부, 요즘 고민, 오빠가 제안해준 방향 같은 것들

이야기하느라 못 물어봤다.

내가 그때 어땠는지.


근데 안 물어봐도 괜찮은 거 있지.

앞으로를 이야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냥 지난 내 십 년도 괜찮았다고 나 생각한 것 같아, 오빠.


지난 10년 유리 보호막 같은 회사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던 인내심, 사람 관계, 문제 해결 능력, 또라이 상대하는 방법, 끝까지 싸우는 전투력 같이

꽤 많은 경험치를 쌓은 것 같아.

나 이 안에서 열심히 잘 산 것 같아.

지난 십 년의 나도

그냥 괜찮은 것 같아.


그래서 나 요즘 괜찮아.


이렇게 다시 글도 꾸준히 쓰고,

그림도 천천히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요가도 꾸준히 나가.


나 이 걸음으로 계속 나아가 볼게.

천천히, 꾸준히.






P.S.

고마워, 십 년 전 나를 기억하고 여전히 응원해주는 오빠.

그리고, 당신을 만난 이후로

남들 신경 안 쓰고 내 걸음으로 꾸준히 걷게 해주는 내 곁의 남편, 항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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