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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인선 Moon In Sun Oct 04. 2020

곽진언의 '나랑갈래'를 듣는 밤

'수건을 삶는 게 제일 좋아' 하고 말하던 것이 무색해지는 밤



술을 마시고 곽진언의 '나랑갈래'를 듣는 날에 나는 무슨 글이든 쓸 수 있다.

오늘의 술이 500CC 맥주 한잔이든 소주 한병이든 와인 반 병이든 술이 들어간 채로 '나랑갈래'를 듣는 날에

나는 십 년 전, 이십 년 전 일도 떠올리며 감상에 젖은 채 긴 글을 쓸 자신이 있다.

이때의 자신감이면 나는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 작가도, 브런치북 대상을 받은 강이슬 씨도 부럽지 않다.

나는 무엇이든 쓸 수 있다.


글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대중의 '좋아요'가 그 잣대라면 늘 인스타그램 칠십여 개에서 끝나는 내 하트 아이콘으로 곧 의기소침해지겠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그 어느 때보다 바닥까지 긁어모아 치부를 드러내는 행동에 대하여 나는 이때만큼은 자신이 있다.

나는 곽진언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아직 모른다. 그가 김필과 경쟁구도의 느낌으로 어떤 음악 오디션에 나왔다고만 들었다. 곽진언은 왜 TV에 나오지 않는 걸까. 나는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이 목소리를 가진 가수의 얼굴이, 그의 표정이, 평소 말할 때의 그 말투가 나는 궁금하다.


곽진언의 '자랑'을 우연히 듣던 날, 지하철 출퇴근길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그날 '나랑갈래'도 같이 들었지. 나는 자랑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다가 '나랑갈래'를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지하철 의자에 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여름을 제외하고 봄과 가을이 시작되고 겨울이 깊어지면 나는 출근길에 자주 '나랑갈래'를 듣는다.

곧 표독하고 악덕해질 가면을 쓰기 전, 내 본성을 더듬더듬 찾아본다.


나는 이렇게 노래 가사에 금세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이다. 나는 소설책을 읽다 어떤 페이지에서 마음이 부서지는 사람이다. 나는 글을 쓰다 모든 것이 무너진 채 엉엉 울어버리는 사람이다.

나는 무너진 마음과 부서진 정신을 붙들고, 회사의 정문 앞에서 새로운 마음과 정신을 매일같이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햇살 따뜻한, 눈부신 날에 도망갈래.

다신 못 돌아오게 아주 먼 곳으로

아무도 모르게 나랑 함께 가주지 않을래.

나랑 갈래, 나랑 함께 가지 않을래.

4분 30초의 노래는 이 가사가 반복된다.


지금 주어진 것을 버리고, 돌아오지 않을 먼 곳으로 떠나자고 말하는 감정에 나를 오랫동안 이입한다.

회사를 버리고, 엄마와 아빠를 두고, 지금을 떠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아도 가슴이 아파서 언제고 눈물이 터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도 사라져 버리고 싶다.

회사를, 남편을, 엄마를, 아빠를, 월급을 두고 가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

내 모든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킬 사람과 상황이 남은 인생에 나타나게 될까.

자기소개서와 이력서에 꾸며두었던 안정적인 모험이 아닌, 어릴 적부터 바라오던 커다란 모험의 기회가 내게도 오게 될까.


나는 열다섯 살처럼 아직도

교실의 창문을 깨고 미지의 세계에서 나를 찾으러 온 타잔이,

책상에서 나를 낚아채 다시 깨진 창문으로 뛰쳐나가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 주기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행복하고 안정적인 일상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타잔과 미지의 정글이 그리운가 보다.


그림을 그리면 좋았을까.

작가가 되면 좋았을까.

무엇의 결핍이 서른 중반이 되어도 허기지게 하는 걸까.


열린 창문으로 환절기의 저녁 찬 바람은 계속 불어오고

화장실 앞에는 지난 일주일간 사용한 수건이 산적해 있는 저녁,

“살림 중에서 나는 수건을 삶는 게 제일 좋아” 하고 말하던 것이 무색해지는 밤.




2020년 9월 22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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