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서로를 구원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을까 봐 걱정했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들려오던 숱한 잡음들, 감독과 배우의 교체. 그러나 그 모든 우려를 불식시킨 것은 결국 '배우'라는 본질이었다.
지난 12월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는 벼랑 끝에 몰린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단순히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정의하기엔 두 배우가 뿜어내는 감정의 결이 너무나도 촘촘하고 거대하다. 드라마는 살인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관계 속에서 피어난 기묘한 연대기에 가깝다.
드라마는 평범한 미술 교사였던 안윤수(전도연)가 남편 살해 용의자라는 누명을 쓰며 시작된다. 억울함을 호소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윤수의 얼굴에서 우리는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가진 힘을 다시금 목격한다.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절망감.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과 거칠어진 호흡은 화면 너머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누른다.
그리고 지옥 같은 교도소에서 마녀라 불리는 여자, 모은(김고은)이 등장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눈빛, 속내를 알 수 없는 나른한 미소. 김고은은 <파묘>에서의 에너지를 안으로 꾹꾹 눌러 담아,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속은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캐릭터를 완성했다.
"내가 자백해 줄게. 대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모은이 윤수에게 건넨 제안은 달콤하고도 치명적이다. 너를 위해 내가 살인자가 되어줄 테니 너는 나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죽여달라는 거래. 거짓 자백을 대가로 맺어진 이 '피의 계약'은 두 여자를 뗄 수 없는 공범이자 구원자로 묶어버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백의 대가>의 서사가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반부로 갈수록 개연성은 다소 느슨해지고 치밀해야 할 두뇌 싸움은 감정의 파고에 휩쓸려 흐릿해지기도 한다. 장르적 쾌감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지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가치는 이야기의 완결성이 아니다. 전도연과 김고은이 한 프레임 안에 잡힐 때, 대사 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에서 발생하는 텐션은 그 어떤 화려한 액션보다 강렬하다. 서로를 이용하려다 이해하게 되고 경멸하다가도 연민하게 되는 그 복잡 미묘한 감정선.
서사가 배우를 이끌고 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배우가 서사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작품이 있다. <자백의 대가>는 명백히 후자다. 드라마는 묻는다.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때로는 거짓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윤수와 모은은 각자의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구원이었는지, 아니면 더 깊은 나락으로 이끄는 덫이었는지는 끝까지 지켜본 자들만이 알 수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2025년의 끝자락에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두 여배우의 뜨거운 충돌을 목격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자백을 들어줄 대가는 충분했다.
✨️한 줄 평
: 이야기에 구멍이 생길 때마다 연기가 그 틈을 메우고 결국엔 배우의 얼굴만 잔상처럼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