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내려앉는 그곳

by 책방별곡

영화 〈버킷리스트〉의 엔딩 크레딧이 흐르는 동안 나는 리모컨을 잡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삶의 목록을 다시 쓰기 시작한 주인공을 보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삶이 끝나는 날 나는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눈을 감게 될까?

질문과 동시에 책 냄새가 은은히 깔리며 커피가 식어가는 속도를 굳이 재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로 떠올랐다.


달빛서점.
태양처럼 모든 것을 밝히지는 못하더라도
어두운 밤길에서 발밑 정도는 비춰줄 수 있는 빛.
누군가에게는 목적지가 아니라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중간 지점 같은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다.
달빛서점에는 서두름이 없다. 문을 열면 짙은 월넛 색 나무 바닥이 낮게 삐걱이고 갓 볶은 원두의 고소함과 오래된 종이책의 마른 냄새가 과하지 않은 온도로 섞여 있다. 형광등 대신 3000K의 전구색 조명이 책장 사이를 천천히 훑는다.
그 빛 아래에서는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 안쪽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진다. 서가에는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를 두고 싶다.
나의 마음에 오래 남아 몇 번이고 다시 펼쳐보게 만든 문장들을 적어서 책 위에 올려둔다. 직접 쓴 짧은 띠지도 같이 두른다.
“오늘 마음이 소란스럽다면 이 문장을 먼저 읽어보세요.”
크지 않은 글씨로 건네는 소심하지만 진심인 말 한 줄로 손님들을 위로하고 싶다.


창가에는 혼자 온 사람이 풍경을 핑계 삼아 글을 쓸 수 있는 긴 테이블을, 구석에는 몸을 웅크린 채 책 속으로 잠시 도망칠 수 있는 깊은 1인용 소파를 놓아둔다. 나는 그 공간에서 말수가 적은 주인이 된다. 묵묵히 커피를 내리고 책의 먼지를 닦으며 필요할 때만 고개를 들어 손님의 이야기를 듣는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
화려한 음악 대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리듬이 되는 곳, 도시의 속도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표 같은 공간을 상상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버킷리스트가 죽기 전의 소원이었지만 달빛서점은 지금의 나를 앞으로 걷게 만드는 현실적인 동력이 된다.
언젠가 달이 유난히 밝은 밤, 서점 간판에 불을 켜는 장면을 상상한다. 딸랑, 풍경 소리가 울리면
나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하겠지.


“어서 오세요. 여기는 달빛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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