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단편소설을 써봤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인애는 우영의 등 뒤에서 들리는 짧은 단어들을 마음속 수첩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마른침과 함께 삼켰다. 이상한 일이었다. 말을 뱉지 않고 그저 기록자로서 아이를 바라보자 요동치던 인애의 감정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아이의 말은 공격이 아니라 신음이었다.
2개월 차: 침묵의 표정
두 번째 달, 강의실 스크린에는 무표정한 아이들의 얼굴이 가득 찼다. 화난 것도 슬픈 것도 아닌 텅 빈 얼굴들.
"표정이 없다고 감정이 없는 게 아닙니다."
강사는 스크린 속 아이의 눈을 가리켰다.
"사춘기 아이들은 감정을 들키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가면, 즉 무표정을 씁니다. 근육을 굳히고 방어 태세를 취하는 거죠."
인애는 그동안 놓쳐왔던 수많은 신호를 떠올렸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15도쯤 돌린 각도, 밥을 먹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의 미세한 한숨, 축 처진 어깨의 라인. 그것들은 모두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우영이 대화 도중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드는 건 무시가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어색함을 피하려는 도피였다.
이번 달의 과제는 ‘관찰’이었다.
‘질문하기 전에 아이의 미간을 먼저 볼 것.’
인애는 "왜?" 라는 송곳 같은 질문을 버렸다.
대신 아이의 굳은 얼굴을 보며
"오늘 하루가 고단했구나."라고 읊조렸다.
묻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2개월 차 후반: 거리의 미학
3단계는 '행동'을 다뤘다. 가장 고통스러운 주제였다. 방문을 닫는 행위.
"방문은 단절의 벽이 아닙니다. 아이에게는 ‘산소호흡기’입니다."
강사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유일하게 혼자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도망치는 겁니다. 그 회피는 거절이 아닙니다. 숨을 고르는 시간입니다."
인애는 우영의 닫힌 방문을 노려보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신이 거부당했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가 살기 위해 치는 최소한의 텐트였다. 인애는 억지로 문고리를 돌리지 않는 연습을 했다. 문 앞에 쟁반을 내려놓고 인기척 없이 물러나는 법, '개입하지 않는 돌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사랑보다 인내가 더 필요한 일이었다.
3개월 차: 번역의 기술
마지막 달, 강의실은 실습 현장이 되었다. 강사가 사춘기 아들 역을 맡고, 수강생들이 엄마가 되어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는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해. 지겹지도 않아?"
강사의 날 선 목소리에 인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집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습관적으로 "너 말을 왜 그렇게 해?"라는 말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인애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3개월간 배운 해독표를 머릿속에 펼쳤다.
지겹다는 말은 공격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갈망'이자 '답답함의 호소'다.
"... 같은 말을 계속 듣는 게 많이 힘들었구나."
인애가 천천히 입을 뗐다. 강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까 그만 좀 해요."
강사는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정답이었다. 이 단계에서 인애는 깨달았다. 이해란 완벽한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한 박자 늦게, 감정의 껍질이 아닌 알맹이에 반응해 주는 태도였다.
마지막: 태도의 증명
최종 시험 날. 시험지에는 복잡한 이론 대신 상황만이 주어졌다. 필기 문제는 모든 선택지가 정답처럼 보였고 실기 테스트는 말보다 침묵이 더 긴 점수를 차지했다.
화면 속 아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몰라. 내가 알아서 할게."
인애는 화면을 응시하다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네가 고민해서 결정해 봐. 엄마는 필요할 때 옆에 있을게."
더 이상의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충고도 조언도 걱정도 삼켰다. 그저 신뢰와 공간을 내어주는 것. 시험은 조용히 끝났다.
며칠 뒤, 우편함에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사춘기 해석 5단계 통과 – 3개월 과정 수료〉
인애는 합격증을 꺼내 잠시 바라보다가 서랍 깊숙한 곳에 넣었다. 이것은 면허증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다는 이정표일 뿐이었다.
그날 저녁, 학원에서 돌아온 우영이 현관에 서서 신발을 벗으며 툭 말을 던졌다.
"오늘... 수행평가 때문에 좀 늦게 자."
예전 같았으면 "미리미리 좀 하지."라거나 "내일 학교 가는데 괜찮겠어?"라고 물었을 것이다. 인애는 부엌 식탁에 앉아 아이의 등 뒤에 대고 짧게 답했다.
"그래."
우영의 동작이 찰나의 순간 멈칫했다. 날아올 잔소리를 방어하려 잔뜩 움츠렸던 어깨가 미세하게 펴지는 것을 인애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우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제 방으로 들어갔다.
달칵.
문이 닫혔다. 하지만 인애는 더 이상 그 소리에 상처받지 않았다. 닫힌 문은 단절이 아니었다. 아이가 스스로의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시간이었다. 문 뒤에서도 아이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3개월 동안 인애가 배운 것은 아이를 바꾸는 방법이 아니었다. 아이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단단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법이었다.
거실의 공기가 전보다 한결 넉넉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