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되지 않는 계절 1화

짧은 단편소설을 써봤습니다.

by 책방별곡

​인애의 손이 멈춘 곳은 언제나 우영의 방문 앞이었다. 지름 5센티미터의 차가운 금속 손잡이. 그 작은 쇠붙이가 거대한 국경선처럼 느껴졌다. 손잡이를 돌릴 것인가, 아니면 돌아설 것인가. 그 짧은 망설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애의 발목을 잡았다.
​열다섯 살, 우영의 계절은 혹독한 겨울이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짧고, 건조하고, 날카로웠다.
​“몰라.”
“귀찮아.”
“그냥.”
​세 단어는 우영이 세상과 자신 사이에 쌓아 올린 성벽이었다. 인애는 그 성벽 밖을 서성이는 이방인이었다. 아이가 던지는 투박한 단어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진짜 문장을 해독할 암호표가 인애에게는 없었다. 걱정은 덩굴처럼 자라나 집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고, 대화는 가뭄 든 저수지처럼 말라갔다.
​어느 늦은 밤, 인애는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의 푸른 불빛에 의지해 문장을 입력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춘기 아이 마음 이해하는 방법.’
​수많은 광고와 조언들 사이에서, 유독 건조하고 담백한 문구가 인애의 시선을 붙들었다.
​〈청소년 언어·표정·행동 해석 연구소〉
사춘기라는 타국의 언어를 통역해 드립니다. 1단계부터 5단계까지, 3개월 과정.
​인애는 홀린 듯 ‘등록’ 버튼을 눌렀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에도 과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참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1개월 차: 암호 해독의 시간
​강의실은 고요했다. 인애처럼 마른세수를 한 듯 피로한 얼굴의 부모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첫 달의 주제는 ‘언어’였다. 칠판에는 아이들이 뱉어내는 익숙한 단어들이 적혔다.
​[ 몰라 / 됐어 / 알아서 할게 ]
​강사는 분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춘기 아이의 말은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감정 조절’의 수단입니다. 그들은 말을 통해 사실을 알리는 게 아니라, 혼란스러운 자기 내면을 방어하고 있는 겁니다.”
​인애는 노트에 그 말을 꾹꾹 눌러 적었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강의실을 메웠다.
​“‘몰라’는 정말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알아서 할게’는 독립 선언이 아니라, 지금 너무 불안하니 더 이상 자극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순간, 인애의 펜이 멈췄다. 지난주 우영이 소리치듯 내뱉었던 “알아서 한다고!”라는 말이 귓가에 쟁쟁했다. 그때 인애는 “네가 뭘 알아서 해!”라고 맞받아쳤었다. 그것은 불안에 떠는 아이에게 확성기를 대고 소리친 꼴이었다.
​첫 달의 과제는 ‘기록’이었다.
‘아이의 말을 고치지 말고, 토 달지 말고, 그저 받아 적을 것.’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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