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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N차 정주행

K장녀가 낳은 K장녀

by 책방별곡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연달아 2번 정주행 하며, 나는 애순이라는 한 인간의 궤적을 따라 걸었다.
애순은 익히 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맏이라는 이름 아래, 어깨를 내주고, 꿈을 접고, 웃음을 포기했던 — K장녀, 나의 엄마.


그 시대의 공기를 삼키며 어쩔 수 없이 ‘참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던,
그래서 누구보다 단단하고 누구보다 외로웠던 그녀들의 이야기.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희생'의 노래로 끝나지 않는다.
<폭싹 속았수다>는,
자신을 꺾은 그 손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을 심은 사람의 이야기다.

애순은 자신과 닮은 딸 금명을 낳는다.
그 딸은, 엄마가 접어야 했던 꿈을 조금은 덜 두려운 얼굴로 마주한다.
애순이 걸어온 길 위에, 금명은 또 다른 발자국을 새긴다.
더 멀리, 더 가볍게, 그러나 애순의 눈물과 기도를 밟으며.

이 드라마는 말한다.
사는 것이 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고달픔 사이로,
꺾이지 않고 피어나는 작은 기적들을 보여준다.

K장녀가 또 다른 K장녀를 통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뤄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대물림이 아니다.
슬픔을, 후회를, 사랑을 모두 끌어안고,
한 사람의 생을 두 사람의 삶으로 확장해 내는 숭고한 성장이다.

나는 누구의 못다 한 꿈일까?
금명이처럼 누군가의 꿈이 되어줄 수 있을까?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에도,
애순의 얼굴이, 그녀의 굳게 다문 입술이

나의 어머니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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