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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을 읽고

강남의 꿈, 그 잔혹한 연극

by 책방별곡

삶은 꿈처럼 흘러가지만, 때론 꿈이 삶보다 더 잔혹하다. 황석영 작가의 『강남몽』은 그런 꿈의 무대 위를 걷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기록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참사를 배경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불리는 ‘강남’의 흑막을 걷어내는 이 소설은, 단순한 개발 서사가 아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제각기 욕망과 상처를 품고 강남이라는 대극장의 무대에 오른다. 일본군 밀정에서 재벌 회장이 된 김진, 화류계에서 시작해 상류층 후처가 된 박선녀, 지하 매장에서 일하다 재난의 희생양이 된 임정아까지.


이들은 영웅도 악인도 아닌, 단지 시대라는 파도에 휘말린 생존자들이다. 각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또한 그 무대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거창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은 그들의 인생이, 낯설도록 익숙하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질주해 왔는가. 무엇을 꿈꾸었고, 그 대가는 누구의 몫이었는가. 『강남몽』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시대의 광기를 마주하게 한다.


강남은 여전히 화려하다. 그러나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꾸는 꿈은, 불을 보며 달려드는 나방의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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