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면 불안한 나, 그리고 당신에게
나는 여태껏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주말도 평일처럼 스케줄이 항상 꽉 차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도 다니고, 글도 쓰고, 스토어 운영도 하고, 독서모임도 했다. 거기에 매일 운동, 독서, 각종 공부까지. 내 삶은 빼곡하게 '할 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그런 내가 좋았다. 이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내가 지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작은 일도 힘에 부치고, 사소한 갈등에도 크게 상처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잘못된 생각인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을 그렇게 열심히, 또 성실히 살아내면서 하루의 끝에 하는 생각이 "이만하면 됐다. 내일은 그만 살아야겠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면 또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그 '할 일' 속으로 도망쳤다. 그것들이 끝나면 다시 "다 했다.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 이것의 반복이었다.
신경정신과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삶에 여백이 하나도 없는 게 당신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지 말라고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계속하라고도 못하겠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무리하며 살고 있다는 걸.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몰고 갔다는 걸.
그래서 고민 끝에, 회사 대표님에게 말했다. "저 일주일만 쉬고 싶습니다. 중요한 일들은 모두 마쳐놓고, 업무 공백 없게 준비하고 쉬겠습니다." 이 회사를 4년째 다니면서 나는 한 번도 대표님에게 힘들다, 지친다, 쉬고 싶다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표님은 듣자마자 말했다. "늦게도 말하네. 오래 버텼다. 일주일 가지고 되겠어? 유급휴가 줄 테니까 한 달 쉬어."
그래서 나는 다음 달에 쉼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도 안 가고 회사 일도 안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많은 시간을 뭘로 채워야 할지 덜컥 겁이 났다. 쉬기로 했는데, 쉬는 게 두렵다. 이 이상한 감정의 정체가 뭘까.
생각해 보면 표면적인 이유는 그럴듯하다. 뒤처질까 봐. 일이 밀릴까 봐. 남들은 다 열심히 하는데 나만 쉬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만 솔직해지면 안다. 한 달 쉰다고 커리어가 망하지 않는다는 걸. 그런데도 빈 시간이 두렵다.
진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정체성의 문제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은 생각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바쁘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바쁘면 남들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뭐 해?"라는 질문에 "그냥 쉬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프로젝트가 좀 있어서 정신없어"라고 대답하는 게 훨씬 편하다. 바쁨은 존재 증명이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고, 가치 있는 사람이고,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증명. 그래서 쉬는 순간 불안해진다. 생산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둘째, 회피의 문제다. 바쁨은 도망치기의 가장 그럴듯한 형태다. 일에 파묻혀 있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이 관계가 정말 맞는 건지. 지금 이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이런 질문들은 무겁다. 대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바쁨 속으로 숨는다. 달리고 있으면 생각할 틈이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휴식조차 생산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이걸 콘텐츠로 쓸 수 있을까" 계산한다. 여행을 가면서 "인스타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는다. 연차를 쓰고도 "오늘 뭐 했어?"라는 질문에 대답할 거리를 준비한다. 쉬면서도 쉬지 못한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이건 전략의 실패다. "항상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들으면 가슴이 뛰지만, 실천하면 몸이 망가진다. 체력도, 집중력도, 의지력도 유한한 자원이다. 매 순간 110%를 쏟으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탱크가 비어 있다. 이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배분이 틀렸기 때문이다. 프로는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건 비겁한 게 아니다. 생존의 기술이다.
기준은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이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답이 "별로 없다"면, 그건 힘을 빼도 되는 일이다. 휴식도 마찬가지다. 쉬는 것은 나태함이 아니라 자원 배분의 문제다. 제한된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선택하는 것. 그래서 휴식은 역량이다. 결국 휴식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이기도 하고, 용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술의 측면에서, 우리는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것에 진심일 필요 없다는 것. 힘을 뺄 곳과 쏟을 곳을 구분하는 것. 80%로 해도 되는 일에 100%를 쓰지 않는 것. 용기의 측면에서, 우리는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견디는 것. 생산하지 않는 나도 존재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 조용히 앉아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불편하더라도.
번아웃은 대개 이렇게 온다. 너무 열심히 달려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도망쳐서. 그리고 더 이상 도망칠 힘이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멈춘다. 그제야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지?" 그 질문을 번아웃이 오기 전에 해도 된다. 멈출 힘이 남아 있을 때. 아니, 나처럼 이미 한계까지 와버렸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휴식을 보상처럼 생각한다. 열심히 일했으니까 쉴 자격이 생겼다고.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휴식은 보상이 아니라 권리다. 그리고 그 권리를 스스로 허락하는 것, 죄책감 없이 멈출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의 역량이다.
나는 다음 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빈 시간이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견뎌보려 한다. 생산하지 않는 나도 존재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증명해보려 한다. 그래도 나는 충분하다고. 혹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쉬어도 된다고. 그래도 충분히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