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에서의 진정한 자기 계발에 대하여
불편한 진실을 말하겠다. 자기 계발 산업은 당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결핍을 유지시킴으로써, 더 나은 나를 끝없이 갈망하게 함으로써 작동한다. 자기 계발은 언제나 '지금의 나'와 '되어야 할 나' 사이의 간극을 전제한다. 그 간극이 사라지면 산업도 사라진다. 그래서 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상형을 제시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CEO. 10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리더. 퇴근 후 사이드 프로젝트로 월 천만 원 버는 직장인. 영어 공부로 외국계 이직에 성공한 누군가.
진짜로 새벽 5시에 일어나본 적 있다. 일주일 동안. 아침 루틴도 만들었다. 물 한 잔, 스트레칭, 10분 명상. 뿌듯했다. 그리고 2주 뒤, 묘한 허탈함이 왔다. 성공했는데 왜 뿌듯하지 않지? 질문이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새벽에 일어날 수 있을까"에서 "나는 왜 새벽에 일어나고 싶었던 걸까"로. 대답이 없었다. 돌아보니 이건 내 목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썸네일에서 본 목표를 복사해서 내 삶에 붙여 넣기 한 거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보니 순서가 잘못됐다. '내가 뭘 원하는가'를 먼저 묻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원하는 걸 나도 원한다고 믿었다. 새벽 기상, 운동, 독서, 사이드 프로젝트. 전부 좋은 것들이다. 문제는 그게 좋은 것이냐가 아니라, 그게 내 것이냐는 거다. 자기 계발인데 정작 '자기'가 없었다. 방향 없이 속도만 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빨리 가려고만 했다. 도착지가 없는 경주. 그러니 아무리 달려도 '다 왔다'는 감각이 올 리 없다. 이상하지 않나. '자기'계발을 그렇게 열심히 했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수백 번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단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다.
왜 우리는 "충분하다"를 말하지 못할까. 멈추면 게으른 사람이 될 것 같아서다. 발전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공포.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는 불안.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이야기한다. 낙타, 사자, 어린아이. 짊어지는 자, 거부하는 자, 창조하는 자. 복종에서 저항으로, 저항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첫 번째 단계에 멈춰 있다는 거다.
낙타는 짊어진다. "해야 한다"를 기꺼이. 한국 사회는 이걸 성실함이라 부른다. 인내라 부른다. 책임감이라 부른다. 사자는 거부한다. "아니요"를 외친다. 니체는 이걸 "거룩한 부정"이라 불렀다. 반항이 아니다. "해야 하니까"에서 "원하니까"로 삶의 연료를 바꾸는 것. 왜 우리는 사자가 되지 못할까. 뜯어보면 결국 두려움이다. 거절하면 관계가 깨질까 봐. 기회를 놓칠까 봐. 나쁜 사람이 될까 봐. 그래서 모든 것에 "예"라고 말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그렇게 "예"라고 말한 것들 중에 진짜 내가 원한 건 몇 개나 될까.
사자가 된다는 건 이 질문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건가?"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는가?"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가?" 그 질문 끝에 오는 게 어린 아이다. 니체의 세 번째 단계. 어린아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해야 한다"를 부정한 자리에서, "나는 이것을 한다"를 긍정하는 단계. 여기서 순서가 중요하다. 사자의 부정이 먼저다. 빼기가 먼저다. 타인의 기대, 사회의 요구, 복사해서 붙여 넣은 목표들. 이것들을 걷어낸 자리에서만 나만의 것이 자라날 수 있다. 꽉 찬 컵에 물을 부으면 넘칠 뿐이다. 비워야 담긴다.
여백이라는 생산성- 비운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까.
구글 캘린더를 떠올려보자. 알록달록하게 채워진 일정표. 뿌듯하다. 그런데 일정과 일정 사이에 30분의 여백도 없다면, 우리는 대체 언제 생각하나? 뇌과학에서 말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아무것도 안 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다. 창의적 연결, 자기 성찰, 미래 계획. 전부 이 상태에서 일어난다. 멍 때리기가 뇌한테는 가장 생산적인 시간일 수 있다. 여백은 낭비가 아니다. 깊이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하지 않을 것들의 목록
워런 버핏의 25-5 규칙. 인생 목표 25개를 적고, 상위 5개만 남긴다. 나머지 20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할 목록"이 된다. 반직관적이다. 그 20개는 나쁜 것들이 아니니까. 오히려 "꽤 괜찮은 것들"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그래도 뭔가 했네"라는 착각을 선물한다. To-do list는 쉽다. Not-to-do list는 어렵다. 뭐가 진짜 중요한지 알아야 하고, "꽤 괜찮은 것"을 버릴 용기가 있어야 하니까.
전략적으로 못하는 사람
모든 걸 잘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모든 일이 나한테 몰린다. "이건 역시 네가 해야지"라는 말과 함께 야근이다. 의도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못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무책임이 아니라 전략이다. 모든 걸 80점 하는 사람보다, 한두 가지를 120점 하는 사람이 대체 불가능해진다. 자기 계발 산업은 모든 영역에서 발전하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거다. 뭘 안 할 건가. 뭘 포기할 건가. 뭐에 "아니요"라고 말할 건가.
그래서, 나는 충분하다
역설적이다. "나는 충분하다"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성장이 시작된다. 결핍에서 출발한 성장은 끝이 없다. 채워도 부족하고, 해도 모자라다. 충분함에서 출발한 성장은 다르다. 선택이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 어쩌면 가장 급진적인 자기 계발은 이 한 문장일지 모른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
빼야 더할 수 있다. 그렇게 더해진 것만이 진짜 내 것이다. 문제는, 그걸 믿을 용기가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