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을 기다리는 건 사랑해서가 아니다

실은 고독이 무서워서가 아닐까

by 최지현

읽씹 당하면 불안하다. 답장이 늦으면 신경 쓰인다. 연락이 뜸해지면 마음이 식은 건가 싶다. 그래서 우리는 답장 속도로 관계를 가늠하고, 읽씹 여부로 마음을 저울질한다. 사랑을 알림 창으로 확인하려 한다. 여기서 필자는, 조금 듣기 싫은 얘기를 하고자 한다. 당신이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는 이유는, 그 사람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당신이 외로워서일 가능성이 크다.


인류 역사에 '연애'만큼 오래도록, 꾸준히, 지속해서 골치 아픈 주제가 또 있을까.

한 인간이 있다. 그는 몇 십 년 동안 자신의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만의 가치와 개념을 정립해 왔을 것이다. 또 다른 한 인간이 있다. 그도 역시 비슷한 기간 동안 이 세상을 오직 자신으로서 경험하고, 해석하고, 나름의 것들을 정의해 오며 깨달아 왔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가.

충돌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부딪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뇌는 그 경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상대와 나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경계가 흐려진다. 연결이 끊기면 나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락에 집착하는 건 여기서 시작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는 고립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분리된다. 어머니의 몸에서, 그리고 세계로부터. 의식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앎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프롬에 따르면,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은 이 분리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일에 몰두하는 것, 군중 속에 섞이는 것, 그리고 사랑.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는 건,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닐 수 있다. 고독이 견딜 수 없어서다. 내가 느끼는 이 간절함이, 사실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나의 고독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는 것. '너의 소식이 궁금해'가 아니라 '나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인 것이다.

뇌과학은 이걸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사랑에 빠지면 상대와 나를 동일시한다. 경계가 흐려진다. 상대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상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경계가 흐려진 상태에서 연결이 끊기면, 나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독한 존재가 동일시를 하면, 오히려 더 취약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을 찾는다. 연락은 가장 손쉬운 안전의 증거가 된다. 연락이 오면 안심이 된다. 이 사람이 나를 잊지 않았구나, 이 관계는 괜찮구나. 그래서 우리는 연락을 기다린다. 안전을 확인하고 싶어서. 문제는 이 안전이 실제 안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답장이 올수록, 그것이 끊길 때의 불안도 커진다. 이 사람이 연락을 안 하면 어쩌지. 이 관계가 식으면 어쩌지. 연락은 안전을 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불안의 원천이 된다.

연락을 기다리는 건 안전을 얻는 게 아니다. 불안의 형태를 바꾸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 불안 속에 갇혀 있어야 할까.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불가능한 걸까.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연락을 자주 할수록 더 연결된 걸까?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자주 확인해야 한다는 건,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뜻이다. 확신이 없다는 증거다. 사랑하는데 연락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냉정한 게 아니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진짜 연결은 빈도가 아니라 확신이다. 연락이 뜸해도 "이 사람은 거기 있다"는 믿음. 매일 증거를 요구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것. 이건 연락뿐 아니라, 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마찬가지다.


연락을 기다리는 건 사랑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서다. 우리는 모두 분리된 채로 태어났고, 그 고독을 견딜 수 없어서 평생 연결의 증거를 찾는다. 그러니 다음에 연락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면, 잠시 멈춰서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게 그 사람이 궁금해서일까, 아니면 나의 고독이 말을 거는 걸까. 둘 다여도 괜찮다. 다만 알아두면 좋겠다. 진짜 연결은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걸. 기다리지 않아도 거기 있다는 걸 아는 것. 그게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한 형태라는 걸.

그리고 한 가지 더. 연락만 그런 게 아니다.

누군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이런 관계야'라고 정의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별로인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사귀는 상태가 아니라고 해서 슬퍼할 필요도 없다. 관계의 이름은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고독을 외면하는 사람은 계속 확인한다. 연락도, 관계의 이름도. 고독을 인정한 사람은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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