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면 사라지고 몰입하면 쌓이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이 있다. '매력'은 자본이다. 사람은 논리보다 호감으로 먼저 판단한다.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끌리는 사람이 기회를 가져간다.
매력 자본은 단순히 외모가 뛰어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다. 호감을 유발하고, 신뢰를 형성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총체적 능력을 뜻한다. 왜 매력을 '자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본은 축적할 수 있고, 투자할 수 있고, 수익을 만들어낸다. 매력도 마찬가지다. 더 중요한 건, 다른 자본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같은 실력도 매력 자본이 있으면 더 크게 인정받고, 같은 아이디어도 더 쉽게 설득된다. 학력이 문화 자본이고 인맥이 사회적 자본이라면, 매력은 그 모든 자본의 승수가 되는 자본이다. 매력 자본이 중요한 이유는, 기회는 사람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가'를 먼저 판단한다. 능력은 그 문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평가받는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력을 쌓으려 한다. 매력을 가꾸려 애쓴다. 매력을 높이라는 조언은 넘쳐난다. 외모를 가꿔라, 목소리 톤을 연습해라, 호감 가는 말투를 익혀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매력을 쌓으려 애쓰는 사람은 어딘가 힘이 들어가 보인다. 반면 그런 노력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노력의 양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조언에 충실한 사람일수록 어딘가 밋밋하다. 오히려 그런 것에 무심해 보이는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매력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의 밑바닥엔 결핍이 있다. "나는 부족하다"는 전제, 그래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 이 욕구는 관계를 암묵적 거래로 만든다. "내가 이렇게 하면, 너는 나를 좋아해 줄 거야." 문제는 사람들이 이걸 감지한다는 거다. 결핍은 보이고, 거래는 피로하다. 반면 자기 삶에 몰입한 사람은 전제가 다르다. 이미 충분하다. 인정은 필요하지만 목매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가 가볍다. 이 사람 옆에 있으면 부채감이 아니라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사람은 결핍보다 충만에, 거래보다 존재에 끌린다. 결국 매력 자본을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매력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것이다. 충만한 사람은 자기만의 중력장을 만든다. 끌어당기려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궤도 안으로 들어온다.
에리히 프롬은 삶의 두 가지 양식을 말했다.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 매력을 쌓으려는 건 소유 양식이다. 획득하고, 축적하고, 보여주려 한다. 반면 자기 삶에 몰입하는 건 존재 양식이다. 가지려 하지 않고 그냥 있다. 사람들은 소유하려는 사람보다 존재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삶은 자기 삶이 아니다. 빌려온 기준으로 사는 삶이다. 기준이 바깥에 있으면 영원히 불안하다. 반면 자기 삶 자체가 흥미로운 사람은 기준이 안에 있다. 이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 단단함이 매력이 된다. 오해는 말자. 이건 타인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자기 안이 차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줄 수 있다. 비어 있으면 줄 것도 없다. 외모나 스타일을 신경 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자기표현의 일환으로 가꿀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역량이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될 때이다.
매력 자본을 쌓는 방법은 좋은 삶을 사는 방법과 겹친다. 자기 삶에 몰입하고, 결핍이 아닌 충만에서 출발하고, 거래가 아닌 존재로 관계를 맺는 것. 이건 매력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그냥 잘 사는 방식이다. 결국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매력적이 되겠다"라고 작정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 삶이 흥미로워서 거기에 빠져 사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계산하느라 바쁜 사람은 정작 보여줄 게 없다. 자기 세계를 짓느라 바쁜 사람은 계산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매력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면 질문 자체가 바뀐다. "어떻게 보일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매력을 잃고 삶에 몰입한 사람을, 매력이 먼저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