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나를 태워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것들

번아웃 끝에 무엇이 남았나

by 최지현

번아웃은 게으른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타버리려면, 일단 좋은 장작이어야 한다. 습기 없이 마른, 오래 잘 탈 수 있는 장작. 나는 좋은 장작이었다. 그렇게 모두 태워버리고 나서야, 재가 되어서야 생각했다. 대체 나를 태운 이 불은 누가 붙였으며, 나는 왜 군말 없이 그리도 활활 타오르기만 했는가. 당신도 이 질문 앞에 선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끝까지 타본 사람이다.


번아웃을 말할 때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얼마나 버텼는지, 얼마나 애써왔는지. 정작 '왜'를 물어본 적이 있는지 묻기는 쉽지 않다. 왜 거기서 타고 있었어. 왜 그 불이었어. 불편한, 혹은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면 그 답은 외부가 아닌 내부, 즉 나를 향해 있으며, 결국 다 내가 선택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세상은 더 편한 답을 준다. 쉬어라. 리프레시해라. 셀프케어를 해라. 번아웃은 이제 산업이다. 명상앱, 웰니스 리트릿, 회복 콘텐츠. 이런 것들은 타버린 장작에게 "컨디션 회복됐어? 다시 들어갈 수 있겠어?"라고 묻는다. 그저, 다시 탈 수 있는 상태로 돌려놓는다. 나는 그게 회복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더 앞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번아웃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계라고 불렀다

번아웃. 원래 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었다. 전구가 끊어질 때. 엔진이 멈출 때. 기계에게 쓰던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고장 난 기계라고 부른 셈이다. 수많은 단어 중에 왜 하필 기계의 언어였을까. 고장 난 전구. 과열된 엔진. 연료가 바닥난 로켓. 인간을 설명하는데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기계의 언어가 필요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다.


Burn-out. 타서, 꺼지다. 꺼지려면 먼저 타고 있어야 한다. 번아웃은 '불이 있었던 사람'의 언어다.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이 있다. 탈진, 우울, 무기력. 하지만 번아웃만이 가진 전제가 있다. 타버리려면 먼저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 번아웃은 불이 있었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단어다.

그래서 나는 번아웃이라는 진단이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고장 난 게 아니다. 뜨겁게 타다 꺼진 거다. 그건 결함이 아니라 진심의 잔해다.


자기 삶을 자기 방식으로 형성하려는 욕구. 니체는 그걸 '힘에의 의지'라고 불렀다. 번아웃은 그 의지가 자기 것이 아닌 방향으로 소진될 때 온다. 내가 타오르던 그 불은, 어쩌면 빌려온 것이었다. 부모의 기대, 타인의 인정, 증명해 보이겠다는 분노. 뜨겁긴 했다. 하지만 내 연료가 아니었으니 결국 재만 남았다.


번아웃이 왔을 때 "빨리 회복해서 다시 달려야지"는 답이 아니다. 타버린 잔해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먼저다. 거기서 찾아야 할 건 회복 방법이 아니라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내가 진짜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내가 진짜 되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였나."

"내가 진짜 분노했던 지점은 어디였나."


끝까지 타본 사람은 안다. 재 속에서 발견하는 건 상실이 아니라, 처음으로 선명해지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번아웃에게 감사하다. 끝까지 타보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것들이 있다. 그 불이 내 불이 아니었다는 것. 그 난로가 내 집이 아니었다는 것.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나를 봤다.


질문이 하나 더 있다. 다시 탈 것인가. 재가 된 사람에게 이건 쉬운 질문이 아니다. 또 타면 또 꺼질 수 있다. 하지만 타지 않는 삶이 가능한가. 솔직히 말하면, 아직 답을 다 찾지 못했다. 재를 들여다본다고 바로 보이는 게 아니다. 어떤 답은 시간이 지나야 온다. 어떤 답은 다시 타보면서 알게 된다. 다만 이제는 질문을 알고 있다. "너는 무엇에 진심이었니?" 그리고 "그건 정말 네 진심을 받을 자격이 있었니?"


당신도 끝까지 타본 사람이라면, 지금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말해주고 싶다. 서둘러 답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이번엔 제대로 들여다보자고. 그러고 나서, 다시 타오를 준비가 되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다시 타오르자고. 오늘도,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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