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감의 첫 시작은 7살 때로 추정된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늘 저녁엔 혼자 집에 있었던 나는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다시 나가봐야 한다며 급하게 구두를 신는 아빠를 붙잡고 가지 말라며 떼를 썼다. 아빠도 그때는 많이 난감하셨는지, "아빠더러 어쩌라고!"라고 소리치고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셨다. 어린 딸을 두고 일을 하러 저녁에 나가야만 했던 아빠의 마음이 오죽했을까에 대해서는 서른넷이 된 지금의 나로선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이나, 7살의 나는 그때 베란다 너머로 해가 지는 그 붉은 하늘이 너무나 슬펐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노을을 보면 괜스레 울적해진다. 나는 밝은 낮이 좋은데, 혼자 있어야 하는 밤이 시작되는 게 슬퍼서였을까.
내가 우울증, 그러니까 정신병리학적 명칭으로는 '우울장애', '기분조절장애', '계절성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라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병명을 마주하게 된 것은 스물여섯 살 때이다. 이유 없이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가지러 갈 힘이 없어서 목이 말라도 침대에서 한 걸음도 못 움직였다. 대학교 때 들었던 교양 수업으로 '이상정신학개론'을 들었던 기억이 났는데, DSM4 표준 우울증 진단 기준이 떠올랐다. 혹시, 설마, 내가 우울증인 건가. 그냥 몸에 힘이 없고 몸살이 심하게 난 건 아닐까, 그렇게 며칠을 물도 안 먹고 침대에서 버티다가 결국 위경련과 탈수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갔다. 7개의 수액 통이 주렁주렁 달린 게, 꼭 나를 살리려는 생명의 나무 같다고 생각하면서 온갖 진통제와 영양제를 몇 시간 동안 혈관에 억지로 넣고 나니 어기적 거리긴 해도 내 두 발로 집에 갈 수는 있는 상태가 되었다.
다음 날, 누가 권유해서도 아니고 강제로 끌려간 것도 아닌, 자의로 가까운 신경정신과에 갔다. 정신과는 초진을 받으려면 무조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렇게 허탈하게 돌아가려는 나를 간호사 선생님이 다급하게 붙잡았다.
"조금 기다리실 수 있으면, 오늘은 예외로 진료 보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다음에 오실 때 신분증 꼭 챙겨 오시고 검사 끝나면 다음 진료 예약 하고 가시면 됩니다."
아, 내가 불쌍해 보였나. 아니면 이대로 돌려보내면 내가 죽기라도 할 것 같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힘이 없어서 고개만 푹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대체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물을 닦느라 양 볼이 다 헐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의사 선생님을 마주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아주 높은 수준의 우울과 불안 상태이며, 3일에 1번 내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요 선생님. 저는 지금 딱히 우울할 상황이 아니거든요. 회사도 잘 다니고, 죽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긴 하지만 그건 사람들 다 그런 거 아닌가요. 그냥 입맛이 없고 잠을 좀 못 자고 가끔 가슴이 답답한 게 다인데, 제가 왜 우울증에 공황장애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돈이 없어서 휴학하고 알바를 네다섯 개씩 했을 때도, 그다지 슬프지가 않았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의사 선생님은 내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고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래 진작에 나 아프다고, 힘들다고 뛰쳐나왔어야 할 아이가, 참고 참다가 이제 좀 살만 해 지니까 나 좀 봐달라고 튀어나온 거예요. 우리 그 아이를 치료해 줍시다."
그렇게 나의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로 이 병들과 공생하는 것에 제법 능숙해졌다. 공황 발작은 약을 먹으면 어떻게든 컨트롤이 되는데, 이놈에 우울감은 한 번 시작되면 도무지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약이 있는 곳까지 가서, 약 봉투를 뜯어서, 컵에 물을 따라서, 알약과 함께 그것을 삼켜내는 그 과정이 어찌나 힘이 드는지.
우울감은 참 성실하게도 나에게 와서는 눈앞이 캄캄하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나는 내 우울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우리 함께한 지 8년이면 참 오래된 시간인데, 그동안 너를 부를 이름조차 없었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군. 하는 무용한 생각을 하다가, '검은 소나기'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의 우울아, 너는 내게 검은 소나기 같다. 갑자기 들이닥쳐서 한 껏 퍼붓고 나면, 나는 그 시간 동안 속절없이 아주 검게 흠뻑 젖어버린다. 그런데 너는 소나기라서, 지나간다. 늘 지나간다. 영원히 이 폭우가 지속될 것 같이 굴다가도 이내 사라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우울이, 아니 나의 검은 소나기가 오면, 어. 자네 왔는가. 하고선 흠뻑 받아내고 이내 사라지는 너에게 손을 흔들어 주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한 바탕 네가 나를 잠식시키고 가버리면, 나는 나만의 의식으로 아주 아주 긴 샤워를 한다. 일부러 가장 비싸고 양이 적은 샴푸와 바디워시로 나를 어린아이 달래듯 그렇게 씻어낸다.
검은 소나기야, 너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까 이제 네가 별로 무섭거나 싫지만은 않다. 너는 나를 잠깐동안 아주 검게 적실 수는 있어도, 아예 잠식시키지는 못한다는 걸 내가 안다. 너는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는 잠깐의 소나기일 뿐이니까. 이제 네가 오면 나는 너를 온몸으로 다 받아낼 생각도 없다. 너를 피할 우산이라던가, 처마 밑으로 뛰어야겠다. 그러고는 잠시 멈춰 서서, 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겠다. 억지로 뚫고 달리다 흠뻑 젖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는 걸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
너에게 이름을 붙인 순간, 나는 이미 네게서 한 발 떨어진 존재가 되었다. 우울의 가장 깊은 바닥에 있을 때에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하도 깊게 잠겨 있어서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어도 너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우울, 너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안에서 한 발 빠져나왔다는 증거다.
혹시 나와 비슷한 친구를 둔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검은 소나기가 지나가고 있다. 결국 지나갈 것이다."라고.
그러니 우리 괜히 흠뻑 다 젖지 말고, 각자의 우산을 펴고서 조금 기다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