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하는 사람들 사이, 나만의 균형 잡기

무리 짓는 습성은 본능이라지만 저는 끼기 싫다고요

by 최지현

회사에 다니다 보면 이상한 걸 느낄 때가 있다. 분명 어른들의 세계인데,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난다. 중학교 교실 냄새. 누가 누구랑 밥 먹는지, 누가 누구 편인지, 누가 요즘 '아웃'인지. 교복만 벗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 처음엔 그런 사람들이 유치해 보였다. 왜 저렇게까지 편을 자를까. 왜 저렇게까지 무리를 지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편 가르기는 '나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불안한 사람들이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불안하다.


편 가르기를 잘하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자신의 위치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실력으로 인정받는다는 확신이 없을수록, 관계로 안전망을 만들려 한다. 촘촘하게 엮인 '우리 편'이 많을수록 안심이 되니까. 그들의 편 가르기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다. 이걸 이해하면, 조금은 덜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그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니체는 '무리 도덕'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다수가 자신들의 생존 방식을 '도덕'으로 포장하는 현상. 튀지 마라, 잘난 척하지 마라, 우리와 함께해라. 이게 어느새 '착한 것', '옳은 것'이 된다. 직장에서 대부분의 경우, "다수의 흐름에 맞춰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다. 네 판단보다 집단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선언. 개인의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 '우리'의 방향에 올라타라는 요구. 더 교묘한 건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리 도덕 안에서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편을 안 드는 건 '배신'으로 해석된다.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이야?"라는 질문. 그건 질문이 아니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야"라는 통보다.


그래서 홀로 서는 사람은 위협이 된다. 무리의 규칙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니까. 그들은 그런 사람을 '이상한 사람', '정치적인 사람', '차가운 사람'으로 분류한다. 낙인을 찍어야 안심이 되니까. "저 사람은 저래서 저런 거야"라고 설명이 붙어야 자신들의 선택이 정당화되니까. 니체는 이런 상황에서 '거리의 파토스'를 이야기했다. 물리적으로 떠나라는 게 아니다. 심리적으로 한 발 물러서라는 것이다. 무리의 규칙을 '그들의 규칙'으로 객관화하는 것. 그 규칙이 나를 자동으로 지배하게 두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무리 안에 있으면서도, 무리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따뜻한 곳에 있으면서 동시에 깨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무리의 따뜻함 속에서 천천히 나를 잃어버리는 쪽이 나는 더 두렵다.


소속이 없으면, 소속의 싸움에 끌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사람. 양쪽 진영 모두에서 "저 사람은 뭐지?"라는 시선을 받는 사람이 된다. 물론 오해는 감수해야 한다. "양다리 걸치는 거 아냐?" "눈치 보는 거 아냐?" "속으로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이 들려와도 해명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해명은 또 다른 편 가르기의 시작이 되니까. 내가 연습하는 건 '느슨한 연대'다. 모든 관계에 비슷한 농도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와 커피를 마신다고 그 사람의 모든 편에 서는 게 아니고, 좋은 대화를 나눈다고 같은 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의 가장 큰 시험은 외로움이다. 양쪽 모두에서 '진짜 우리 편은 아니야'라는 취급을 받을 때, 흔들릴 수 있다. 그 순간 무리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온다. 아늑하고, 명확하고, 더 이상 애매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외로움은 '선택한 외로움'이라고. 떠밀려서 혼자가 된 게 아니라, 스스로 이 자리를 택한 것이라고. 그 차이가 중요하다. 같은 고독이라도, 선택한 고독은 자존감을 깎지 않는다.


결국 균형을 잡는다는 건, 양쪽에 똑같이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게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일관된 태도로 보여주는 것이다. 누가 이기든, 나는 내 일을 할 것이다. 누가 지든, 나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선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일, 매 순간 다시 해야 한다. 오늘 점심 자리에서, 내일 회의실에서, 다음 주 회식 자리에서.


편 가르기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건, 결국 이런 것 같다. 그들의 불안을 이해하되, 그 불안에 전염되지 않는 것. 무리의 따뜻함을 거부하지 않되, 그 따뜻함에 중독되지 않는 것. 홀로 서는 외로움을 감수하되, 그 외로움을 무기로 삼지 않는 것. 그렇게 오늘도 나는 무리 짓는 이들과 공생하며 그들로부터 나를 지킨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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