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맞서 강해지는 방법

능동적인 자기 보호에 대하여

by 최지현

맞선다는 건, 주먹을 쥐고, 목소리를 높이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눈을 피하지 않는 것. 자리를 지키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 상대가 나를 무너뜨리려 할 때,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맞섬의 대상은 바깥에만 있지 않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먼저 맞서야 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원인을 바깥에서 찾는다. 저 사람이 나빴다. 상황이 나빴다. 운이 나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나쁜 사람도 있고, 나쁜 상황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그걸 허락했을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불편한 질문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책임 추궁이 아니라 주도권의 회복이다. "그 사람이 나빴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당한 사람이 된다. 당한 사람의 자리에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왜 그걸 받아들였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나는 피해자에서 주체가 된다. 내가 허락했다면, 다음번엔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진짜 능동적 자기 보호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착취를 허락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 밑바닥엔 '이해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내 상황을 알아주길 바라고,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왜 이게 상처인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설명한다. 상대가 그것을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설명은 변명이 되고, 변명은 굴복이 된다. 설명하는 동안 나는 계속 낮아진다. 이해해 달라고 구걸하기까지의 자세가 된다.


진짜 단단한 사람은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해받으려는 욕구 자체를 내려놓는다. 타인의 인정 없이도 내가 옳다는 걸 안다. 상대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알면 그만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상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진짜로 단단한 사람이 된다. 이해받으려는 욕구를 내려놓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가 온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는 것. 그런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많은 경우에 나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를 지키려면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돼야 한다. 거절해야 하고, 선을 그어야 하고, 때로는 등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나를 싫어할 것이다. 이기적이라고, 차갑다고, 변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를 선택하는 것. 누군가의 적이 될 걸 알면서도 나를 편드는 용기가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게 뭘까. 나의 동요다. 상처받은 표정, 눈물, 떨리는 목소리, 변명, 해명.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게 그들의 보상이다. 그러면 그걸 주지 않으면 된다.

무반응. 이것은 내 에너지를 그쪽에 쓰지 않겠다는 적극적 결정이다. 상대가 아무리 찔러도 피가 나지 않으면, 결국 지치는 건 찌르는 쪽이다. 침묵한다.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변명하지 않는다. 그냥 내 할 일을 한다.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본능은 '반응'하고자 한다. 해명하고 싶고, 억울함을 풀고 싶고, 상대를 이해시키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본능을 이기는 순간,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공격할 수 없다. 무반응은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강력한 무기다.


'나는 내가 지킨다.' 이 말은 누군가 지켜주길 기다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백마 탄 왕자도, 정의로운 심판자도,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도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나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나 자신에 대한 의무이자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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