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없이 나를 사랑하는 연습
모든 생명체의 첫 번째 본능은 '자기 보존'이다. 세포는 자기를 복제한다. 식물은 햇빛을 향해 자란다. 동물은 위험을 피한다. 이게 이기적이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럼 반대로 묻겠다, 이게 나쁜가? 아니다. 이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제1원리이며,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생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배고프면 먹는다. 아프면 쉰다. 위험하면 도망간다. 이건 이기심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에서 이 본능을 거세당한다.
'이기심(利己心)'이라는 단어 자체를 뜯어보자. 利(이로울 리), 己(자기 기), 心(마음 심). 그러니까 이기심이란, '자기에게 이로운 마음'이다. 자기에게 이로운 것이 어쩌다가 '나쁜 것'으로 가치평가 되었을지 생각해 보자.
"모든 고귀한 도덕이 자신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에서 자라 나오는 반면에, 노예도덕은 애초부터 '외부적인 것', '다른'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 —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두 도덕이 출발하는 지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봐야 한다. 주인도덕은 긍정으로 시작한다. "나는 좋다"가 먼저다. 그다음에야 "나와 다른 것은 나쁘다"가 온다. 반면 노예도덕은 부정으로 시작한다. "저들은 악하다"가 먼저다. 그다음에야 "그러므로 나는 선하다"가 따라온다. 이 출발점의 차이는 단순한 순서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존재 방식 자체의 차이다.
주인도덕에서는 자기 존재 자체가 출발점이다. 존재가 선행하고, 평가가 후행한다. 주인은 먼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긍정한다. 마치 사자가 사자임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듯이, 주인은 자기 존재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반면 노예도덕에서는 타인의 존재가 출발점이다. 타인에 대한 반응이 선행하고, 자기 정의가 후행한다. 노예는 자기 자신만으로는 자기를 정의할 수 없다. 먼저 "저들"을 부정해야만 "나"를 규정할 수 있다.
이 차이는 방향성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주인도덕에서는 시선이 자기 자신을 향한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모두 자기 내부를 향한다. 주인은 자기 내부에서 가치의 원천을 찾는다. 반면 노예도덕에서는 시선이 타인을 향한다. "저들은 무엇인가? 저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가? 저들은 무엇을 악으로 규정하는가?" 노예는 외부에서 가치의 근거를 찾는다.
니체가 "의기양양한 긍정"이라고 표현한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긍정이 아니다. 의기양양하다는 건, 투쟁 없는 긍정이라는 뜻이다. 정당화가 필요 없는 긍정이라는 뜻이다. 타인의 승인이 필요 없는 긍정이라는 뜻이다. 주인은 그냥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을 긍정한다. 이 긍정은 자기 자신에게서 자라난다. 마치 씨앗이 땅에서 자라나듯이, 도덕이 자기 존재에서 자라난다.
그러니까 니체의 이 문장이 우리에게 말하는 건 이거다. 당신이 "나는 이기적인 걸까?"라고 고민할 때, 그 질문 자체가 노예도덕의 증거라는 것.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지 않고, 외부의 평가 기준에서 출발하고, "이기적이다"라는 부정적 규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주인도덕이라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것이 나에게 좋은가? 이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이기적인지 아닌지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선언하자. 나는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게 아니다. 이기심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내가 나를 지킬 줄 안다는 증거다. 내가 나에게 '예'라고 말할 수 있다는 증거다. 당신이 당신의 시간을 지킬 때, 당신의 에너지를 아낄 때, 당신의 욕구를 존중할 때, 누군가 "이기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 말이 더 이상 당신을 위축시키지 못하게 하라. 그 말은 번역하면 이렇다. "네가 너를 챙기니 내가 불편해." 그들의 불편함은 당신의 죄가 아니다. 당신이 당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은 생명의 권리다.
니체는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예'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타인에게도 진정한 '예'를 줄 수 있다고. 텅 빈 사람은 타인에게 줄 것도 없다. 자기를 채운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무언가를 건넬 수 있다. 이제 죄책감 없이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할 때다. 이것이 가장 건강한 이기심이며, 가장 정직한 생존이며, 가장 아름다운 긍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