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배움 확장하기
쉬다가 다시 뛰다를 반복하다 우연히 시작한 새벽 러닝에 빠진 나는 지난 세 달 동안 주 2-3회 새벽에 한강을 뛰었다. 단순히 달리는 것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새벽에 차가운 공기를 가르면서 계절이 바뀌는 동안 달라지는 한강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오래전부터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가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 새벽에 러닝을 시작하고 나니 출근길부터 에너지가 달랐고 기대했던 하루를 보내지 못했어도 나름의 위안을 받기도 했다.
러닝이 정신적으로는 명상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잠을 자려고 누워도 몰아치는 생각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고 다시 일어나 책상 앞에 앉곤 했는데 러닝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사업에 대한 생각을 뒤로 젖혀두고 짧더라도 순간과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진정한 “명상”이 가능했다.
이렇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달리던 어느 날, 달리면서 내가 얻은 다양한 배움과 깨닮음이 사업을 하는 마음가짐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젠가 링크드인에서도 이른 시간 불이 꺼지는 스타트업 사무실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른 시간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만들려고 해도 일이 많지 않았던 1인 기업으로는 괜찮았는데 공동창업자가 합류하고 본격적으로 사업화가 시작되면서 공동창업자와 나는 24시간 주 7일 일을 했다. 낮시간에는 고객을 응대하고 퇴근 시간 이후부터 IR관련 업무와 함께 기타 업무를 처리하면서 밤늦은 시간이건 새벽이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콜미팅을 하기도 했다. 6개월 만에 지칠 대로 지친 나와 공동창업자는 주말 알바를 채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주말에 근무를 쉬자고 약속했는데 쉴 수 있다면 좋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이 시점부터는 쉼이 곧 불안이었다. 내가 쉬면 내 사업도 쉴 것 같았고 (그 당시엔 실제로도 그랬지만) 내가 감히 쉬면서 (예를 들자면) 신 같은 존재가 내 사업을 나에게서 뺐어 갈 것 같기도 했다.
1년이 된 지금도 아직까지 의도적인 휴식이 필요한데, 특히나 나처럼 처음 사업을 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사업 초기일수록 숨을 돌릴 수 있는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시작할 땐 몰랐는데 시작하고 나니 아득하다. 하루의 끝도 없고 일주일의 끝도 없고 1년의 끝도 없는. 내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었고 이게 어느 순간 몰려오면서 막막하고 아득해졌다. 그래서 더더욱 창업가 스스로 이 맺음 들을 만들어 주는 게 꼭 필요하다. 숨 고르기는 더 멀리 가기 위한 전략적인 휴식일뿐 아니라 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느지막이 오전 9시에 나가든 이른 새벽 5시 나가든 러닝을 시작하자마자 내 앞에는 누군가가 달리고 있다. 내 앞에 달리고 있는 이 누군가가 나보다 30분은 일찍 나와서 저 앞에서 러닝을 시작한 사람인지 그저 나보다 10m 앞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달리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달리기를 마무리하지만 내 뒤에 여전히 달리고 있는 사람이 5분 전에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인지 3km를 뛴 나보다 2배를 뛰고도 더 뛰려고 달려가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뜀을 시작하는 내가 혹은 마무리하는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의식하기 시작하면 결국 피곤한 건 나뿐이다.
그러니까 사업을 시작하고 경쟁사를 조사하면서 이 대표님이 5년 전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난 뭘 하고 있었나 라는 의식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시작점도 다르고 종료지점도 다를 뿐 아니라 때로는 비슷해 보이는 두 사업의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기도 하니까.
나는 거리에서 길을 걸을 때에도 내 앞에 누군가 있는 게 불편하다. 아무도 없이 탁 틔여있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차를 탈 때도 심지어 버스를 탈 때도 맨 앞자리가 제일 좋다. 러닝을 할 때도 이런 쓸데없고 이상한 선호가 나올 때가 있는데, 내 앞에 누군가 걷고 있을 때 내가 허벅지 힘을 조금만 더 쓰면 조금 더 빠르게 그 사람을 추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리해서 뛰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 사람은 걷고 있고 나는 뛰고 있으니 언젠가는 어차피 추월할 것이고 걷든 뛰든 또 누가 앞에 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굳이. 이렇게 추월하고 나면 나는 내 페이스를 잃고 결국엔 내가 뛸 수 있는 거리보다 적게 뛰게 된다. 그렇게 꾸준히 걷던 사람이 나보다 멀찍이 앞서 나가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경쟁심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웃긴데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걷거나 뛰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페이스대로 뛰는 것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했다.
나는 앤틀러라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1기에 참여했고 당시 약 80여 명의 창업가가 같은 선에서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2기 3기가 짧은 텀을 두고 시작했는데 그래서 더더욱 나는 의식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앤틀러에 같은 기수 혹은 다음 기수들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창업가들이 정말 많았고 (자랑스럽습니다 호호) 그들의 성과를 듣고 볼 때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들의 성과와 성장은 자꾸 나의 페이스를 의심하는 계기들이 되었고 한동안 모든 SNS를 안보기도 했다.
스타트가 1년이나 늦었던 나는 돌고 돌아 4기에 투자를 받고 뚝딱뚝딱 사업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다시 한번 요약하지만, 사업에도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해 숨 고르기가 필요하고 쉼도 필요하며 시작지점이 다 다를 수도 있고 행여나 같은 스타트라인에서 출발했더라도 나에게 맞는 페이스대로 가면 된다.
러닝을 시작하기 전 평균적인 나의 심박수는 70-80 정도가 되는데 달리다 보면 150 정도까지 올라간다. 뛰다가 힘들어서 다시 걷기 시작해도 100 이하로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감사함 혹은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자주 불안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규모가 커진 나의 사업체가 어느 순간 제로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늘 있었고, 매일 단위로 주문 수나 거래액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기대보다 낮아지는 날에는 이 사업이 이대로 나를 떠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했었다.
이런 불안함을 이야기할 때 선배 창업가 분들이 늘 사업을 시작하기도 쉽지 않지만 망하기도 쉽지 않아요라고 해주시곤 했는데, 떨어지지 않는 나의 심박수를 보면서 다시 한번 되새겼다. 차곡차곡 힘들게 쌓아오고 키워온 만큼 다시 0으로 돌리는 것도 적어도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은 필요할 것이라고. 불씨가 조금이라도 살아있다면 그냥 그대로 사라지지 않게 나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처음 시작과 다른 모습이더라도 전혀 다른 방향이더라도 뭐든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