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맞춰 내리는 고마운 비
25년 9월부터 약 두 달은 늪과 같은 시간이었다. 무언가 해보려고 발버둥 칠 수록 더 깊숙이 빠져드는 진흙탕 구덩이 속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움직일수록 몸이 처박히기만 하니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목표는 점점 흐려지고 의지는 약해지고만 있었다. 그저 누군가 다가와 마법처럼 나를 꺼내주거나 아니면 그냥 더 깊이 처박혀 다 끝내버리고 싶었다.
감당하기 벅찬 상황을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만들었고, 이 때문에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나를 믿고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직원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매일 마주 보는 내가 싫었다.
감사하게도 지금 나에게는 그때의 일과 상황 그리고 감정이 너무나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그 이유를 하나로 꼽기가 어렵다.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노력하진 않았다. 어느 순간 차오르는 불안과 불만이 익숙해졌는지 무뎌졌는지 마음의 평화가 먼저 찾아왔고 그 뒤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과 희망이 생겨났고 그 뒤엔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끌어주었다는 기억이 날 뿐이다.
이런 시간들을 온전히 흘려보내고 또다시 정말 마법 같은 몇 달의 시간을 보낸 지금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간의 일들을 정리해 본다.
대체 어디까지 또 어떤 다양한 일로 내가 힘들어질까 라는 생각에 지칠 때쯤 열심히 들고 있었던 까치발 끝에 바닥이 닿았다. 신기하게도 갑자기 어느 순간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렇게 됐었어야지.”라는 욕심과 고집을 내려놓으니 고객들과 진행했던 인터뷰 내용이 다시 보였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매대 앞에서 ‘뭘 살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고객들을 보면서 좋은 제품을 큐레이션만 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저 말은 어디에서부터 나온 것인지에 대해서 수면 아래 빙산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매대 앞 고객들이 말하는 ‘뭘 살지 모르겠다.’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다.
스킨케어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은 나도 좋은 피부를 갖고 싶은데 일단 지금 사용하는 제품으로는 변화가 없는 것 같으니 무작정 새로운 제품은 사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소비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구매 이후에 증폭된다.
써도 달라지지 않으니까 스킨케어를 포기하거나 수십 개의 제품을 구매하며 닥치는 대로 발라보는 2개의 행동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좋다는 걸 사서 써보았으나 결과를 보지 못한 고객들을 다시 설득할 수 있는 건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내가 믿을 수 있는, 내가 아는 누군가의 말이었고, 이 배움을 통해 우리 팀의 새로운 프로젝트 "대표님 인플루언서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대표님 인플루언서 만들기 프로젝트와 동시에 우리 팀은 우리 서비스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와 우리 서비스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고 이에 대한 팀 내의 이해도를 맞추기 위한 릴레이 워크숍을 진행했다. 우리는 제품을 파는 커머스 서비스도 아니고, 좋은 제품을 잘 사게 만들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아니다. 우리는 고객들의 아침저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 스킨케어 습관을 만드는 코치다.
매일매일 쌓이는 나를 돌보는 습관에서 시작되는 삶의 변화
우리는 드라마틱하게 변화를 만드는 단 하나의 제품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한 아주 작은 선택과 행동이 반복될 때, 결국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변화의 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습관이 쌓일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치켜든 까치발 끝에 바닥이 닿고 우리 팀은 드디어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도움닫기를 할 수 있었다.
SNS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지 세 달 만에 우리는 약 5만 명 의 팔로워를 모았다. 이 오디언스들은 목표했던 대로 미국 유저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렇게 모여든 오디언스들을 대상으로 유료 서비스를 론칭했다. 아직은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혹시나 유료 서비스가 반감을 살까 걱정되어 드러내지 않았고 유료 서비스를 숨겨두었는데, 구매했던 고객들이 친구에게 추천하고 주변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대신 진단 서비스를 사주면서 첫 달 약 1천 불의 매출을 낼 수 있었다.
하루에 구매 한건만 만들자고 목표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말도 퇴근도 없이 고객들에게 보낼 리포트를 작성하고 제품을 포장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으니, 요즘은 매일매일이 그저 꿈같다.
오랜만에 팀원 한 명과 진행한 1:1 미팅에서 나름 용기를 덧붙여 “저 사실 그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라고 고백했다. 놀랄 거라 예상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알고 있었어요.”였다.
당시 나는 귀를 닫고 직원들의 의견과 이야기를 듣는 대신 재고 따지기만 했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안정감과 신뢰를 주지 못했다. 더 불안할수록 점점 더 작은 일까지 간섭하고 평가하고 명령하며, 마이크로 매니징 했다.
그득했던 욕심과 고집을 빼앗기고 나서야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까지도 너무나 감사한 것은 이 시간들을 버텨주고 기다려준 직원들 그리고 그 와중에 도움을 요청한 나의 손을 누구보다 세게 부여잡고 끌어올려준 직원들의 한없는 다정함과 아량이다.
우리 팀은 매일 아침 데일리로 업무를 시작하는데, 요즘은 매일매일 축하할 작은 성공들이 있다.
“고객님이 보낸 리뷰 좀 보세요!.” “기존 고객 추천으로 구매하신 고객이래요!” “00 브랜드가 연락해 왔어요!”
판을 뒤집을 만한 대단한 것을 당장 하루아침에 해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는데, 결국 우리 팀 그리고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대단한 비전과 하루아침에 떨어지는 엄청난 성과가 아니었다. 이런 작은 성공들이었고, 대단한 비전과 괄목할만한 성과는 결국 이런 작은 성공이 만들어주는 우리 팀의 에너지에서 시작되는 것들이었다.
요즘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오늘 커피가 맛있었다 정도 수준의 문장에서 시작했었거든요,
매일같이 감사함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10개를 채우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엔 주어진 한 바닥의 종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감사할 게 너무나 많은 요즘입니다.
직전에 작성했던 헤매는 저의 글을 보자마자 연락 주시고 맛있는 밥을 사주시면서 지금까지 해온 것 자체가 대단하다 응원의 말씀을 해주신 분,
수민님 사무실 근처에 좋은 와인바가 있으니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 하자고 해주셨던 분,
힘들 때 도움이 되는 글이었다며 좋은 글을 보내주시고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던 분,
힘들 때마다 펼쳐보는 책이라며 선물을 보내주셨던 분,
사무실까지 찾아와 끌어내서 특별한 말도 없이 점심 사주고 가셨던 분까지
모두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그 늪에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딱 짚어 말하진 못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글을 적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이 글을 읽어주시는 저의 소중한 지인 여러분 그리고 제 곁을 지켜준 직원 분들이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