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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03. 2018

처음부터 인사직무를 지원한 건 아니었다.

나는 왜 '인사'를 지원했는가


처음 내가 하고 싶던 직무는 인사가 아니었다. 마케팅이었다.

일단 먼저, 

다른 것 다 제쳐두고라도 명백히 확실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재경'은 절대, Never 아니라는 것이었다. 


재경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회계원리'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강력한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공부하라면 할 수 있었고 외우라면 뭐 공식이야 외워서 하면 되었다.

원리에 대한 이해 자체가 도저히 안되었다.




덕분에 직무 하나는 일찌감치 정리하고 다른 직무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현직자 선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이야 NCS직무기술서를 비롯해 각 기업들에서도 아주 친.절.히 Job Description이라는 것을 제공해주지만 그 때는 아니었다. 나의 유일한 직무탐색통로는 온라인 취업커뮤니티, 그리고 '전공과목'이었다.


4년간의 대학생활 중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과목, '마케팅믹스(Marketing Mix)'였다.

쉽게 말하면 경영학 전공자라면 친숙하게 알고 있는 '4P'이다.

(4P : Product, Price, Promotion, Place)


각 P에 대한 전략을 짜내는 것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다.

시험공부를 하는데도 '공부'라는 생각이 안들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마케팅이라는 직무를 했었어도 웬만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웹툰 '유미의세포들'


그렇게 1차 직무로 마케팅을 정한 다음,

다른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스펙쌓기전쟁'에 돌입했다.


대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우리들은 다 같은 곳을 바라봤다.
똑같은 걱정과, 비슷한 말들과, 답이 없는 공감들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방향잃은 길을 가다가, 어느덧 '인턴'이라는 거대한 스펙챌린지를 마주쳤다.

여느 누군가처럼 무조건 해야한다는 생각뿐, 딱히 하지 말아야할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삼성에버랜드 인턴에 합격했다. 무려 채용전제형 인턴이었다.

난 마치 신입사원으로 입사라도 한 것처럼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드디어 이 답없는 레이스를 끝낼 수 있다는 해방감과 기대감에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지원직무와는 전혀 다른 쌩뚱맞은 곳으로 배치된 것이다.

그 때는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 때문에, 순진하게도 나는 새로 배치된 곳에서도 마케팅 업무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생전 처음 보는 건설 용어들이 즐비했다.

사수는 나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이 너무 바빴다. 마치 그 팀에서 혼자 일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받는 인턴이 되려면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먼저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그래야 한다는데,

내가 사수를 너무 배려한건지 가뜩이나 더 귀찮은 껌딱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질문하는 것 자체가 죄송했다.


그래도 시키는 업무에 대해서는 열심히 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해서 사수가 미안해할 정도였다.

그렇게 일찍 주어진 업무를 마치면, 

나는 눈치를 보며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동기들을 찾아 사무실을 서성였다.


그런데,


하필,
인턴 중 동네친구가 인사팀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필,
인턴 중 가장 똑똑하고 나이많은 오빠가 인사팀에 배치되어 있었다.




인사팀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업무였음에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엄청나게 거창한 이유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난 인사 업무를 잘할 수 있겠다' 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뼛속깊이 자리잡았다.

그 때가 4학년 1학기였고, 가야할 길과 커리어패스를 결정했다.

'인사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 때부터 인사(人事)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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