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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 작가 Dec 21. 2021

'고맙다.'는 말이 속상할 때.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얼마 전,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엔 친구들과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했는데, 어쩐지 억울한 마음에 이후 가족들도 내려와 함께하는 일정으로 마무리했다.


여기서 '억울한 마음'이라는 건, 올해 거의 작업실과 집만을 오가며 작업한 시간들에 대한 투덜거림이라 하겠다. 안 그래도 집순이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유가 합쳐진 까닭이다.


어쨌든 내가 기대한 여행은 당연히 가족여행보다 친구들과 함께한 일정이었다. 가족과의 여행은 늘 그렇듯 내가 완전히, 마음껏, 즐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 성향이 다른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계획은 내 몫이며 실행과 이후 각자의 투덜거림도 전부 내 몫이니까.


한 예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 짧은 일정으로 다녀온 해외여행에서 난 가족들에게 이렇게 선언하기도 했다.


"앞으로 여행은 각자 친구들이랑 가."


참고, 참고, 참은 울분이 섞여 분노로 폭발한 경고 섞인 다짐이었으나,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짧은 일정을 뒤로하고, 운전도 당연히 내가 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별 탈 없이 잘 끝났다. 나의 분노를 목격한 가족들은 그 이후 내 눈치를 살펴주었지만, 여전히 뭐든 해보고 싶은 내 성향과 맞진 않는다.


여독이 풀려 일상에 복귀한 며칠 전, 엄마는 저녁을 먹으며 이런 말을 꺼냈다.


자식들과 함께 제주도에 다녀왔다고 말하니 친구들이 부럽다고 했다고. 본인의 자녀들은 대부분 결혼을 한 뒤로 자기 가족 챙기기 바쁘다고.


엄마는 친구들 중 당시에도 늦게 결혼한 편에 속하기도 하지만,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나와 동생 덕분에 유일하게 자녀와 잦은 외출이 가능한 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는데 엄마는 혼잣말처럼 뒷말을 덧붙였다.


"나야 고맙지, 너희가 나 때문에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고."


순간 나와 동생의 눈은 동시에 마주쳤다.


이내 미간을 좁히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도 재미있었는데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말을 뱉으며, 나는 엄마가 나이를 들어감을 또 실감했다.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날에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도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우리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한다.


"엄마는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당연한걸."


하지만 엄마 역시 별것 아닌 것에도 우리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엄마에게서 할머니의 모습을 겹쳐보곤 한다.


나이 듦이란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고, 사소한 것마저 고마워지는 일일까?


어쨌든 엄마의 고맙다는 말 때문에 내심 투덜거렸던 가족여행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했다. 더불어 친구들끼리 각자, 여행 다니라던 나의 확고한 경고는 지켜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의 말대로 가족여행은 내게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로 맞춤형 여행 루트를 내놓아야만 하는 여행 컨설팅과 비슷한 일이지만 그것 자체가 엄마에겐 자랑이고, 행복일 테니까.


그래도 '고맙다.'라고 반복해 말하는 엄마보다, 다소 뻔뻔하게 구는 엄마의 모습을 더 바라본다. 여전히 여행 컨설팅은 내 취향에 안 맞지만, 엄마가 좋아하면 나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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