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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 작가 Nov 15. 2021

선생님, 성(姓) 붙여서 이름 부르지 마세요.

너무 정(情) 없잖아요.

내가 영어강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학원은 초등학생과 중학생 위주의 작은 프랜차이즈 학원이었는데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학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당시 강사 경력도 없는 나를 믿어주고 채용해주신 고마운 원장님 덕분에 애들과 함께 공부하며,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재미있게 일했더랬다.


이전까지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초등학생을 주 상대로 일하는 건 처음이라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론 내가 생각보다 아이들과 잘 맞는다는 걸 알았고, 티칭하는 일을 재밌어한다는 걸 깨닫게 된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됐다. 


워낙 각양각색의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은지라 각자의 개성도 뚜렷했는데, 그중 2학년 남자아이 하나가 요주 인물이었다. 


그의 상담 때 선생님이 고생 많으실 거라며 이미 경고했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힘든 학생이었다.


대표적인 특징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엄청 나서 앉아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는데 마치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 있으면 불이라도 붙는 것처럼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를 귀여워했던 건, 순수하고 똘똘했으며 상당히 섬세한 아이였다는 데 있다. 여자 아이들이야 기본 적으로 이미 화장이나 미용 쪽에 일찍 눈을 떠서 (자매인 경우는 더욱 빠름) 내가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마스카라를 했는지, 아이라이너를 그렸는지, 머리를 잘랐는지 염색을 했는지까지 전부 지적당했는데(실제로 받은 질문들) 남자아이들은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빨리 끝내고 집에 가는 것과 게임, 유튜브, 간식에 초점이 맞춰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남자아이는 달랐다. (이하 김철수라 부르자) 


철수는 나를 빤히 보다가, 종종 내게 갬동을 선사하는 말들을 뱉곤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선생님, 오늘 피곤해 보이네요?"

"아, 선생님이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그렇게 티 났나.)"

"어디가 아픈데요?"

"머리가 좀 아파서 약 먹었어, 괜찮아. 자, 이거 뭐라고 했지?"(공부로 다시 화제 전환)


다음날.


"선생님, 오늘은 안 아파요?"

"(갬동)"


이런 식이였다.

아이들이 갖는 관심은 대체로 일회성이 많았는데, 철수는 그걸 기억했다가 다음날 확인하곤 했다. 손에 붙인 밴드를 보고도 다음 날 묻는 식이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유독 발을 버둥거리며 집중을 못하던 철수를 자제시키려 그의 뒤로 스윽 다가가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어허, 김철수! 선생님이 그거 다시 물어본다고 했어어(찌릿)"

"선생님!"

"왜."

"자꾸 성 붙여서 이름 부르지 마세요!"

"왜?"

"정이 없잖아요!"


철수의 귀여운 반항에 난 웃음이 터졌지만, 겨우 꾹 눌러 참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잘 알겠기에, 알겠다고 토닥여주고 집중시켰는데 그 말이 어쩐지 계속 지금까지 남아있다.


아이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나는 내 어릴 적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철수의 저 말 역시,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우리도 성을 빼고 부르면 다정하고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지지만, 성을 빼고 부르면 꽤 거리가 있는 사이처럼 느껴지곤 하지 않는가. (ex 엄마가 하는 말 : 김영희 너어! 엄마가 청소하라고 했어, 안 했어억?!)


만약 철수가 아닌 또래 아이가 같은 요구를 하며 같은 이유를 말했다면, 본래의 나는 "우리가 정까지 있어야 할 사이냐?"라고 반문했을 것이다. 물론 장난이지만, 이게 바로 내가 '예쁘게 말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본래의 모습이다.


그 후 나는 '선생님'이기에 철수가 원하는 대로, 이름만 다정히 불러주었다. 물론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할 땐 다시 냉정한 목소리로 성(姓)이 튀어나오곤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아이가 섬세한 아이라는 걸 인지했고, 말을 더 조심히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잘 물들고, 잘 따라 하며, 잘 상처 받으니까. 


나의 첫 학생들이자, 그들에게 내가 첫 선생님이었기에 어떻게 기억될지, 아니 이미 기억에서 지웠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좋았던, 다정했던, 상냥했던 선생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정(情) 없이 느끼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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