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의 힘

사랑의 힘

<제 3 부> 맹자님, 인간이 善합니까?

by 청목

7. 사단 보안대에서 춘천 보안대로


다음 날이 밝자 명찰 없는 군복의 군인 둘이 들어왔다. 먼저 그의 옷을 갈아입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태워 어디론가 그렇게 한참 동안을 내달렸다.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도주할까 우려하여 손목을 뒤로하여 수갑을 채웠다.

그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제 이곳 사단 보안대에서 수사가 끝나, 본부인 춘천 보안사로 이동한다는 것을 박 병장은 알게 되었다.


춘천 본부 보안사에 도착해 막사 옆 건물로 들어간 다음, 그들은 다시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 아마 지하인 듯, 빈방에 그를 집어넣고 곧 문을 잠그고 나갔다.

실내에 불이 켜져 있으나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옆에 매트리스 두 장이 겹쳐 있고, 담요도 두 장이 있었다. 얼마 지나자 문이 열리고 밥을 가져다 놓고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몹시 불안했다. 그 사이 밥맛도 잃었는지 아예 밥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이 정확히 몇 월, 며칠인지 날짜도 알 수가 없었다. 옮겨 온 그곳이 지하실이라 더 추위를 느꼈다. 특히 다친 왼쪽 무릎이 몹시 욱신거리고 아파왔다. 일단 담요를 덮고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그는 너무나 힘들고 지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출입문 여닫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병사가 죽을 가져와 먹으라고 했다. 그래도 배가 많이 고팠던지 죽을 조금 떠먹었다.

여전히 속이 울렁거렸고 기침을 계속하며 누워 있었다. 얼마 후 문이 열리고 그를 나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다친 무릎으로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가 혼자 일어서지 못하자 한 병사가 옆에서 부축을 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밖은 이미 밝은 아침이었고 옆의 사무실로 데려가 의자에 앉혔다.


조금 뒤 3∼40대쯤 되어 보이는 수사관이 들어와 의자에 앉더니, 박 병장의 서류를 책상 위에 놓고 집 주소, 탈영동기, 월북동기, 가족관계 등을 다시 확인하여 물었다.

본부인 춘천 보안대 조사관은 앞서 15사단 보안대 조사관들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15사단 보안대 조사관들처럼 처음부터 큰 소리로 겁을 주거나, 거칠게 위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보드라운 털 속에 사나운 발톱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도 아주 부드럽게 조용조용했다. 마치 회유하고 달래듯이 상대방의 마음을 우선 누그러뜨리고 스스로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할 힘도, 눈을 뜰힘도 없어 가만히 감고 있었다. 담당 수사관은 이미 작성된 조서를 그대로 소리 내어 천천히 읽고는,


“이 조서는 네가 진술한 것이고 네가 인정하여 지장을 찍은 것이다.”하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그가 고문으로 정신을 잃었을 때, 그들이 임의대로 그의 무인을 찍었고, 그가 깨어 일어났을 때,

그의 엄지손가락에 붉은색 인주가 묻어 있었다. 그들이 의도한 대로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술서를 작성하여 지문을 찍어 놓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 조서에는 박병장 고향의 후배 ‘한 모’, 그리고 그날 밤, 길을 잃고 00사단 초소에서 처음 만나 길을 물었던 초병 최 일병이 사실과 전혀 다르게 진술했다는 말을 듣고,

“고향의 후배 한모와 그리고 한밤중 길을 잃고 부대를 찾아가다 초소에서 만났던 초병 최 일병을 대면시켜 달라.”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내 온전한 정신으로 지장을 찍은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조사관이 언성을 높이며,

“야가, 지금 뭐라 카나? 이놈아가 나를 보고 없는 죄를 만들어 거짓진술을 강요한다는 거야?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빨갱이들은 말로 안 통한다니까.”

박병장은 다시,

“이 조서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고 계속 부인하자,

“정말 좋은 말로 해서 안 되겠구나! 좋게 말할 때 협조하면 매도 맞지 않을 텐데.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나? 네가 그렇게 했다는 증인 진술이 여기 다 있는데, 너 혼자 아니라고 고집부려 봐야 아무 소용없다. 사실대로 인정하고 협조해라! 좋게 말할 때, 시인하고 끝내자.”하고 계속 그를 어르고 위협하고 한편 달랬다.

그러나 그는,

“저는 월북을 처음부터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하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자 그도 할 수 없다는 듯, 옆에 서 있는 병사에게,

“야! 안 되겠다. 호텔 방으로 모셔라!”하고 이르고는 일어서 나가버렸다.

병사 둘이 그를 끌고 옆 방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그의 목덜미와 팔을 뒤로 꺾어 물속에다 머리를 쳐 박고, 꺼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는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친 왼쪽 무릎이 찌릿찌릿하고 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곳에서는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자기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야겠다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다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한 병사가 일어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다친 무릎으로 혼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두 명의 병사가 그의 양쪽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나와 의자에 겨우 앉혀놓았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만 있다 나온 탓인지 유리창으로 비치는 밝은 빛에 눈이 부셨다.

조금 뒤 중키에 30대 중반쯤의 새로운 사람이 수사를 위해 들어왔다. 그러자 세 명의 병사가 일제히 경례를 올렸다. 의자에 앉은 그 조사관이 그의 이름을 호명하며,

“박군! 그간, 잘 쉬었나?”

점잖은 목소리로 아주 부드럽게 말하고 서류를 뒤적이며,

“이제 조금만 보충하고 확인하면 되겠구먼.”하고,

그는 박병장에게 앞에 놓인 서류를 천천히 읽어 보라고 했다.

“이것은 15사단에서 작성된 내용 그대로입니다.”하고 화를 내며 서류를 보는 데서 찢어버렸다.

박병장, 그 자그마한 몸,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힘이 나와 지금까지 그렇게 버텨낼 수 있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것을 인정 못하니 차라리 죽이라! 고문을 하든, 총으로 쏴 죽인 든 마음대로 해라!”

조사관은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뜻밖이라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 원하면 그렇게 해주지.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너 하나 죽이는 건 쉬운 일이야. 남해까지는 멀어서 안 되겠고, 동해에 수장시켜 줄까? 네 까짓것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어. 너 여기서 이렇게 죽어도 네 가족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어. 너 하나 죽이고 행방불명으로 보고만 하면 끝이야! 이 빨갱이 새끼가 환장을 했구나!

이제 준비해.”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그는 밖으로 나갔다. 병사들이 학교 책상 같은 것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의자를 놓고 그를 앉혀놓고 그 반대쪽에서 그의 손과 발을 묶었다.

한참 후에 조사관이 다시 들어왔고,

“네가 죽여 달라 했으니 원하는 대로 해주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는데, 너 여기서 인정하고 지장 찍을래? 죽을래?”

그 말에 박병장은 다시,

“거짓으로 진술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

조사 담당관은 옆 병사들에게,

“준비시켜-!”하고 명령했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그는 또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실제 몸은 떨리고 심한 공포를 느꼈다. 병사들이 상자를 열어 뭔가를 꺼냈고 수건으로 그의 눈을 가리고 허리를 의자에 꽁꽁 묶었다. 조금 뒤 한 병사가 뒤에서 그를 꽉 잡았고, 동시에 양쪽 엄지발가락에 심한 통증이 왔다. 그리고 양 엄지손가락 손톱 밑에도 무엇으로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으로 그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곧이어 전화기 돌리는 소리가 나는 순간 온몸이 저리고 경련이 나며 머릿속이 왕왕거리고 가슴에 통증이 오고 혀가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전화기 돌리는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한 듯 고함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옆의 책상이 넘어지고 뭔가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조사관은 잠시 멈추게 하고는,

“협조할래? 죽을래?”하고 다그치며 물었다. 그는 정신이 희미해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성기 끝이 찌릿찌릿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신도 모르게 소변이 저절로 나오고 의식을 잃었다.

그것은 바로 전기 고문이었다.


그 뒤로 그는 아예 아무 기억이 없었다. 오늘이 며칠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감방에 눕혀 있었다. 그때까지도 계속 식은땀이 나고 아직도 그 전기 고문의 시달림과 고통으로 가슴은 진정되지 않고 계속 벌렁거렸다.

여기까지 끈질기게 잘도 버텨왔던 그였지만 또다시 전기 고문을 받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 이제 그도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었다. 전기가 흐를 때마다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쳤고 그때 엄지손가락을 찔렸던 흉터가 아직까지도 그의 문신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이어 입을 벌려 쓴 맛이 나는 뭔가를 입안으로 넣어주는 듯했다. 얼마 후 답답했던 가슴이 좀 편해지는 듯했다. 고통스러웠던 전기 고문 생각이 나자 또다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렴풋이 어디선가,

‘막내야! 너를 믿는다. 꼭 살아야 한다.’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왈칵 눈물이 솟았다.

그 후, 이제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는 밥에 물을 부어가며 억지로 먹었다.

며칠이 지난 지도 알 수 없었다. 또 끌려 나가 의자에 앉혀졌다. 수사관이 서류를 들고 와서 지장만 찍으면 된다며 그 앞에 서류를 밀어 놓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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