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부 > 맹자님, 인간이 善합니까?
5. 너, 부대를 탈영했지? 그리고 월북하려고 했잖아!
그들은 차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그가 탈주를 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손목에 수갑을 채워 뒤로 묶었다.
도착하자 그의 신발을 먼저 벗기고 발목에도 수갑을 채웠다.
처음부터 그들은 그를 오로지 북으로 탈주를 시도한 탈주범으로 몰아갔다. 발목에도 수갑을 채운 것은 탈주 예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몹시 불안하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들이 수사하는 데 있어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끌고 가기 위해 미리 겁을 주고, 사전 길들이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박병장에 대해 신원조회, 인적 사항 등에 대한 조사를 했다. 본적지 주소, 가족관계, 소속 부대 명, 탈영 이유 및 탈주 동기를 물었다.
왜 하필 북쪽으로 향해 갔느냐? 결국 북쪽, ‘적으로 도주범’으로 몰아가는데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거기에 쏟았다. 조사받고 있던 박병장, 그 자신도 그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조금만 말실수를 해도 그들은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그의 온몸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그들이 수색하는 가운데 그가 부대를 나오기 전, 아버지께 낙서처럼 써놓았던 쪽지가 그의 상의 왼쪽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들은 그 쪽지를 펼쳐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버님,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고 싶군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간다면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간다, 그럼 어디를 가겠다는 건데……?
야! 이건 바로 ‘북으로 도주’ 하겠다는 것 아냐? 이 쪽지의 내용이 무슨 뜻이냐?”
갑자기 그렇게 물었을 때, 박병장으로서는 어쩌면 지금 당면하고 있는 그 상황에 대한 당혹감으로 심지어,
‘아, 저 쪽지를 내가 언제 썼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정황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아무튼 보안대 수사관들은 이미 그쪽으로 몰아가기 위해 무섭게 다그치며 물었다. 지금까지 사나흘 밤을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더구나 그는 너무 두렵고 긴장했던 탓에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급박한 그 상황에서 머리가 텅 비어 오는 듯,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살벌할 정도로 위협적인 그 험악한 수사관들 앞에서 한동안 그는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럴수록 박병장, 그를 더욱 매섭게 다그쳤다. 그가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어! 저 쪽지를 내가 썼나? 언제, 그리고 왜 썼지?’하고 자신에게 되묻고 당시의 상황을 천천히 뒤돌아 생각해 보았다.
그 당시, 박병장은 잠시 한 생각에 머물렀다. 그처럼 죽느냐 사느냐 급박한 상황에서 불현듯, 자기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고향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난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죽음까지도 이미 각오한 아주 절박한 그 순간이었다. 그때 언제까지고 자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 그 아버지께 무언가 한마디 남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그 분위기부터 사뭇 다른 서슬 퍼런 수사관이 자기를 노려보며 무섭게 다그칠 때 어떻게 조리 있게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람이 너무나 억장이 무너지면 당연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저 멍한 상태에서 무슨 말도 어떻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한동안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는 이미 몸이나 마음이 너무나 지쳐 있었다. 더구나 ‘이선임’으로부터 맞은 아픔과 상처의 통증으로 그는 아직도 심하게 부대끼고 스스로 버텨내기 어려웠다.
그리고 내무반이 아닌 풀숲에서 어떻게 잠인들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바르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한참 만에야 낙서와 같은 그 메모를 ‘자기가 직접, 자기 손으로 썼다는 것, 그리고 그 쪽지를 왜 썼는지, 언제 썼는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는 험악한 그 상황에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고 더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조차 더듬거렸다.
그가 한 말은 ‘상사에게서 구타를 당하고 너무나 억울해서 자살하려고 나오다가 문득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렇게 썼다.’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때, 바로 말꼬리를 잡으며,
“자살이라고? 그러면 네가 스스로 죽겠다는 건데, 어떻게 살아 돌아와 효도를 하겠다는 거냐?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고 갑자기 책상을 ‘쾅!’ 소리가 나게 내려치며 제일 선임인 듯한 조사관이 그렇게 물었다. 다른 보안대원들은 그런 선임의 얼굴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 만에 그가 고개를 모로 꺾으며 드디어 입을 떼었다.
“야! 이건 ‘한 건(件)’이야! ‘북으로의 도주!’ 그대로 작성해 올려!”
“아, 예!”
그들은 그렇게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일이 아주 잘 되었다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그렇게 해왔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밀고 나갔다.
그 말이 그렇게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맹수가 자기 입맛에 딱 맞는 먹음직한 먹잇감을 바로 눈앞에 발견했을 때처럼 이제 어떻게 그 먹잇감을 몰고 갈지에 골몰했다.
더구나 보안대 수사관들은 그의 왼쪽 상의 주머니에서 찾아낸 그 쪽지에 낙서하듯 써놓은 몇 글자의 메모, 여기서 그는 본인이 그렇게 메모한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들이 바라는 바, 그들의 입맛대로 바로
‘월북할 의도였다.’로 몰고 갔던 것이다.
“너, 부대를 탈영했지? 그리고 월북하려고 했잖아!”
갑자기 또 책상을 치며 큰소리로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너무 놀랐다.
“아니오. 그게 아니라 선임의 구타 때문에 자살하려고 나왔다가 다시 복귀 중에 밤이라 길을 잃었다니까요.”
그가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바로 보안대 수사관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이 빨갱이 새끼가, 북한으로 탈출하려고 했다가 잡혀 놓고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이 빨갱이 새끼가…….’
그는 그들이 말하는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도저히 맨 정신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혼자서 한참을 입속으로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하여 되뇌어 보았다.
그에게는 위로 형들이 셋이 있었다. 형들은 모두 지난 6.25 전쟁 때 국군으로 나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고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다. 그런 그에게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무슨 빨갱이예요?”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들이 의도한 대로 그가 부대를 탈영하여 ‘적, 월북(越北), 북으로 도주하려고 한 자(者)’로 착착 몰아갔다.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보안대 조사반은 탈영병인 그를 일단 체포해 놓았고, 무엇보다 그를 북으로의 도주자로 엮어 넣을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빌미, 자신이 부대를 나올 때 아버지께 하직하듯 써 놓았던 바로
‘그 쪽지’는 그들에게 있어 아주 확실한 근거를 확보한 셈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너무나 신뢰했다.
“야! 이건 ‘한 건(件)’이야! ‘북으로의 도주!’ 그대로 작성해 올려!”
일단 그렇게 결정이 내려지면 그것이 곧 사실(事實)이고, 진실(眞實)이 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박병장, 그를 북으로의 도주자로 몰아갈 관련 증거 자료만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아주 적절했던 타이밍, 그들은 마치 이러한 사건을 기다려왔고 그와 같이 적당한 때에 아주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기다리던 호박이 넝쿨 째 굴러 들어오기라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이기도 한 ‘빨갱이 잡는 애국적인 한 건’으로 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론에 따라 그야말로 일사천리, 그들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으로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사실이 어디 따로 있나? 사실은 우리가 만들면 그게 바로 사실이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사실이 아니면 그것을 사실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오직 그들 방식대로 그들이 목적하는 바, 그들이 신앙처럼 믿는 ‘나라에 충성(忠誠)’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머릿속에 굳게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적어도 그들의 사고로는 아주 당연하였고 매우 옳은 것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이미 그것을 관철시키고 밀고 나갈 소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갖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전방에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뎌 내고 있던 건실한 한 국군장병을 그리고 자기 자식이 건강한 몸으로 오직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께 참으로 효자였던 한 젊은이를 어떻게 ‘북으로의 도주자’, 소위 ‘빨갱이’로 몰고 갔는지 그때, 그 현장으로 가보자.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일어나게 하려면 거기에 따른 사전에 그 사건에 걸맞은 적절한 동기(動機)가 있어야 한다.
‘북, 적으로의 도주, 월북 시도라고 가정했을 때, 그가 왜 월북을 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거기에 부합되는
‘사전 동기’, ‘북에 대한 동경’, 등 그럴만한 이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안대 조사관은 곧바로 박병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부대의 직속상관 바로 ‘이선임’을 다시 불러들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주 철저하게 박병장을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던 원인 제공자, 그 이선임’이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그들은 박병장의 직속상관, '이선임'을 불러들여 그의 신상에 대해 샅샅이 묻고, 사전에 그럴만한 근거가 있는지, 만일 어떤 뚜렷한 증거가 없더라도 거기에 부합되는 예로 ‘북한 전단을 소지하고 있었다든지’, ‘평소 북한을 찬양했다’든지 하는 ‘적당한 증거 자료를 작성 보고하라’고 지시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말을 맞추고, 손을 써 미리 어떻게 하라고 했을 때, 바로 박병장의 직속상관, ‘이선임’ 그가 어떤 인물인가?
새벽부터 나가 탄약을 수령하고 한밤중에 돌아온 ‘박병장’을 불러 밑도 끝도 없이 그에게 탄약 창고에 빨래를 해서 널어놓았다며 윽박지르고, 한 시간이 넘게 사정없이 구타를 한 바로 그 장본인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헌병대에 영장 신청’까지 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여기서 바로 ‘이선임’, 그는 또 한 번 그의 역량을 적극 발휘, 박병장과는 실제로 아무 관련이 없는 거짓 진술을 위해 보안대 수사반에 적극 협력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모선임은 자기 입맛에 맞는 적당한 부대원 몇을 골라 보안대 조사반의 요구대로 박병장에 대한 거짓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조사관이 그를 수사하는 가운데 몰아세우며 제시하기를,
“야! 네가 평소에 북한을 동경하고 월북하려고 했잖아! 그 증거가 다 여기 이렇게 있어! 너희 부대 동료들이 진술한 증거가 다 여기 있거든. 그런데 왜 너 혼자 그것을 아니라고 하는 거야? 네가 아니라고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소용없어, 공연히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바른대로 말해.”
이미 이선임과 차출된 부대원들이 임의로 진술한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박병장, 그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이제부터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죽음과도 같은 시련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야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