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부 > 맹자님, 인간이 善합니까?
2. 맹자님, 인간이 善합니까?
“선임 하사님, 오늘은 할 수 없고 다음에 꼭 대접해 드리지요.”
어쩔 수 없이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선임은 너무나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몹시 화가 난 듯, 얼굴을 붉히고 혼자 투덜거리며 돌아섰다.
마치 ‘그래? 감히 선임인 내 말을 어겨! 너 언제 제대로 걸리기만 해 봐.’하는 느낌이 박병장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대로 돌아간 이선임은 그를 만나면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아예 본체도 않고 인사조차 받지 않았다. 실제로 인사계 이선임은 그에 대해 무언가 벼르고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장병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5분 대기조’에 편성시켜 놓았다. 그래도 그는 따져 볼 수도 없었다.
그 당시 1년 앞서 ‘68년 1월에 김신조 남파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 군복무기간이 한동안 6개월이 더 연장되었다. 그리고 연장되었던 복부기간이 다시 원상 복귀되면서 한꺼번에 많은 군 인력이 제대하여 나가게 되었다. 그 바람에 가뜩이나 현역군 인력이 부족하게 되었다. 결국 남아 있는 장병들이 2시간 근무하던 것을 4시간씩 연장 근무해야 했다. 당시, 그 어느 때보다 군복무가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그날은 1969년 5월 1일이었다.
박병장, 그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는 ‘5분 대기조’여서, 새벽부터 춘천 제57 탄약중대 본부로 나가 탄약을 수령해야 했다. 그의 포병 부대는 비무장지대 가까이 있었다. 춘천에 있는 탄약 중대 본부에 다녀오려면 이른 새벽부터 출발해야 했다. 그날도 역시 새벽 4시경에 출발했다. P병장, 운전병, 그리고 하사관 이렇게 셋이었다.
당시 탄약 분배를 받는 것조차 먼저 오는 순서가 아니었다. 탄약을 일찍 받으려면 탄약을 지급하는 병사들에게 뭔가 뒷돈을 챙겨 줘야 했다. 생각해 보면 무슨 부식물을 배급받는 것도 아니고, 훈련을 위한 탄약을 수령하는데 뒷돈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그런 관행이 그곳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마냥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해가 진 뒤에야 보급을 받을 수 있었다. 탄약을 보급받고 나니 늦은 저녁이 되었다. 근처 식당에 들러 저녁 식사를 하고 밤늦게 돌아오게 되었다. 비무장지대 가까운 전방 부대까지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멀었다. 서로 졸지 않으려고 생 라면을 깨물어가며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날 당직 사령인 이선임은 밤늦게 이제 막 귀대한 박병장을 갑자기 호출했다.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다.
그가 탄약 수령을 위해 춘천에 다녀오는 사이 사령관이 복무점검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 탄약고에 세탁한 빨래를 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어,
‘군기(軍紀)가 해이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이선임은 그 일을 박병장이 한 것으로 지목하고 그를 호출한 것이다. 더구나 새벽 춘천에 나가 탄약을 수령하고 밤이 늦어 지금 막 돌아온 그를 불러 그에게 다짜고짜,
“박병장, 네가 탄약고에 빨래를 널어놓았지?” 하고 다그치며 물었다.
“빨래라니오? 오늘 새벽에 탄약 받으러 갔다가 이제 온 제가 무슨 빨래를 했겠어요?”
그는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데도 이선임, 그는 박병장의 말은 처음부터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 많아.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영창 가게 생겼는데…….”
그 문제 때문에 자기가 ‘헌병 군기교육대에 영창’ 가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그를 몰아세웠다.
그는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이어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선임 하사님! 거기 있는 빨래의 명찰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하고 군복이면 명찰, 내복이라도 자기 이름 표시가 있을 테니 확인하면 바로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모선임은 더욱 큰소리로 화를 내며,
“잔말 말고 엎드려 뻗혀! 이 새끼야! 명령이야!”
그는 ‘명령!’이라는 말로 박병장을 몰아세웠다. 거기다 그는 아주 ‘말대꾸도 하지 마라!’는 듯, 구둣발로 정강이를 걷어차고 뺨까지 후려쳤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문밖으로 나가더니 미리 준비라도 해 놓은 듯, 눈 치우는 넉가래 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그때부터 무차별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무려 1시간이 넘게 계속되었다.
박병장은 신음 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그저 그의 화가 풀릴 때까지 그렇게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지난번, ‘술 한 잔, 잘 사라!’는 말을 거절했던 일, 바로 휴가 마치고 그가 귀대할 때의 그 섭섭함, 그 화풀이를 지금 이렇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빨래 사건은 하나의 빌미였고 이선임은 박병장에 대해 지금까지 벼르고 있었던 앙갚음, 그 분풀이를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는 맞으면서 아픔과 고통을 못 이겨 차라리 아파죽겠다는 듯했어야 했다. 혹여 박병장이 그랬다면 무참하게 매질하던 그의 손이 조금은 일찍 멈추지 않았을까?
이선임은 바라 건데 박병장이 처음 몇 대만으로도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고함을 지르거나 몸을 딩굴리고, 아니면 곧바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무조건 제가 잘 못했으니 용서해 달라!’ 만약 그랬다면…….
그런데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맞으면 맞을수록 고통으로 큰소리는커녕, 작은 신음 소리조차도 내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 시작은 이선임, 자신이 상사로부터 지적받은데 대한 그 화풀이를 위해서 시작을 했으나, 그러한 무자비한 매질로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는 그 모습을 이선임, 그는 은근히 즐기고 있지 않았을까?
맹자님은 일찍이 ‘인간이 선(善)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사람, 이모선임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가만히 돌아보면 그 정황으로 보아 박병장이 빨래를 해서 탄약고에 널지 않았다는 것을 어쩌면 이모선임,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평소 박병장은 자기가 한 잘못을 남에게 둘러 댈 그런 사람도 아니라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 이선임에게 있어 우선 빨래를 누가 했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상관으로부터 지적을 받았고 그 분풀이를 할 적당한 대상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적당한 대상으로 바로 박병장을 떠올린 것이다.
이 선임은 그렇게 자기의 화가 풀릴 때까지 무자비한 구타를 했다.
어쩌면 때로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와 같이 잔인하고 악(惡)한 성향이 있어 상대방을 무참히 괴롭힘으로 그 상대방이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것에 대해 그것을 은근히 즐기는 인간의 심리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상대방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그 대상이 괴로워할수록 본인은 그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그와 같이 상대방이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종(種)이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동물 가운데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이 그러지 않을까?
한 시간여의 구타가 그렇게 끝나고 겨우 절뚝거리며 박병장이 내무반으로 돌아왔을 때, 맞은 곳의 아픔도 아픔이려니와 무엇보다 억울하고 분한 생각에 도저히 잠을 이루 수가 없었다. 그는 새벽녘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만 아픈 몸 뒤척였다. 그렇게 날이 밝아 왔다. 그래도 내무반에 같이 지내던 동료 상병이 물수건과 응급처치 약을 가져와 다친 상처 부위를 닦고 약도 발라 주었다.
아침이 되자 밤사이 당직 근무를 섰던 선임이 들어와 근무교대 차례가 되었다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몸을 끌다시피 하여 당직 근무를 하려고 행정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이모선임, 책상 위에 박병장의 이름이 상단에 적혀 있는 서류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어제의 빨래 사건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물어, ‘헌병대 15일간 징계 영창’을 신청한다는 서류였다.
더구나 그 ‘영장 신청’을 작성한 사람이 바로 어젯밤에 그를 그토록 사정없이 구타했던 이모 선임이었다.
서류의 맨 아래 그의 서명이 거기 있었다. 언제 그렇게 작성해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직접 서명까지 해놓았던 것이다.
그 순간, 박병장은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로 그렇게 구타를 당한 것도 너무 분하고 억울한데, 거기다 자신을 ‘헌병대 영창’까지 보낸다는 것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아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헌병대 영창’이라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다. 당시 ‘헌병대’, ‘헌’ 자 소리만 들어도 모두가 그저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헌병대 영창! 어제 무참히 맞은 것도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생각할수록 이모선임, 그에 대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착했던 박병장이었지만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순간, 자기도 모르게, ‘저도 죽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초소 근무를 나가기 전에 칼빈 소총에 실탄이 든 탄창을 장전시켰다. 그도 쏘아버리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죽겠다고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졌다.
이제 하사관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모 선임하사를 맞닥뜨릴 일만 남았다. 이미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그다음 일이고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막 밖으로 나서려다 말고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였다.
박병장, 그가 돌아오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가 생각난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아버지께 뭔가 꼭 한 마디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병장에게 있어 바로 이 순간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쪽지에 유서(遺書)를 남기듯 몇 자 적기 시작했다.
‘아버님,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고 싶군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간다면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습니다.’
그가 서둘러 쓰고 있을 때, 누군가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는 급히 쪽지를 접어 상의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과연 박병장이 그 일을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을까? L 모 선임이 앉아 있을 하사관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 모든 상황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그는 두 손에 칼빈 소총을 힘을 주어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제 막 하사관실 출입문을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잠시 박병장은 무슨 생각을 해서인지 안의 동정을 살피듯 문 앞에 멈춰 섰다.
가끔 주말이 되면 부대로 놀러 오곤 했던 이선임의 아이들 모습이 그때, 그의 눈앞을 스쳤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그 아이들 모습이 생각이 난 것이다.
사실 박병장, 그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할 만한 그럴 위인이 되지 못했다. 지금 당장, 이선임, 그가 눈앞에 나타나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겨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아닌 어린 그 아이들 모습이 눈앞을 가리자 하려던 행동을 멈춘 것이다. 결국, 그는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거기서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순간의 결정은 ‘이선임’에게 있어서나, 본인 ‘박병장’에게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저 무연히 뒤돌아 나와야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