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부 > 맹자님, 인간이 善합니까?
3. 그는 자살을 생각했다
이제 그가 혼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스스로 자살(自殺)할 일만 남았다.
일단 부대 밖 초소로 나가 근무 서는 병사를 돌려보냈다. 다음은 자살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초소에서
나왔다.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 사이 길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가끔 선임들이 술 마시러 다녀온다는 봉오리 마을 쪽이었다. 봉오리 마을은 생각보다 꽤 멀었다.
숲 속 길을 한참 그렇게 걸었다. 그리고 우거진 숲 속 그늘진 곳에 앉아 전날 춘천에 갈 때 보급받아 남겨
두었던 생 라면을 꺼내었다. 그런데 어제 밤사이 이어진 심한 구타 후유증으로 입안이 모두 헐어 깡마른
라면을 도저히 깨물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난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몹시 피곤하고, 긴장된 그런 상황에서도 눈이 자꾸만 감겼다.
그래도 산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해는 이미 중천에 있었고 오월의 한낮이라 기온이 올라갔다.
그는 할 수 없이 나무숲으로 가려진 어느 묘지에 기대어 잠시 쉰다는 것이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그곳에서 한참을 아래로 더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 거기 민가(民家)가
나오고 다행히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는 술 한 병과 어포, 주전부리할 것 등, 먹을거리를 구했다.
그리고 좀 전에 눈을 붙였던 묘지 옆으로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따라 억지로 삼켰다. 그저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죽을 수 없었다. 그는 술기운이라도 빌려 죽으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소총을 머리에 대고 여러 차례 죽으려는 시도를 했다.
‘자살(自殺)!’ 말이 쉽지,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막상 죽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두렵고 떨렸다. 자살하려 막 총을 들어 올리면 어김없이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더구나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한사코 그를 말렸다.
‘막내야! 너마저 그리 죽으면 아버지 혼자 어찌 살겠냐? 그래도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면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내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 네 목숨은 부지해라!’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 두렵고 막막한 자신의 처지도 그렇고, 생각할수록 그저 서글픈 생각에 혼자 흐느꼈다. 그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몸은 부대꼈다. 처음 술기운이라도 빌려 자살을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빈속에 독한 술을 그렇게 마셨으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이 절박한 순간에도 그저 꾸벅꾸벅 속절없이 잠이 쏟아졌다. 결국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자다 일어나고 밝은 낮에는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몸을 피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하룻밤, 하루 낮을 보내고 잠에서 깨어보니 주변은 밤이 되어 깜깜하였다. 남은 과자부스러기와 빵 등을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억지로 삼키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까지 죽으려 했던 마음을 일단 돌리기로 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살아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박병장은 부대로 다시 복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지난 5월 1일 밤, 이선임으로부터 밤새 맞아 아픈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기 부대 쪽이라 여기지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