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의 힘

사랑의 힘

< 제 3 부 > 맹자님, 인간이 善합니까?

by 청목

1. 휴가 다녀오는 길


1969년 3월 5일, 그해 이곳 강원도 전방의 날씨는 아직도 쌀쌀했다. 이때 자그마한 체구의 한 군인이 버스에서 내렸다. 바로 20여 일 휴가를 마치고 막 귀대하는 ‘박병장’이었다.

그가 이곳 춘천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전방에 있는 자신의 부대로 들어가는 군용차를 얻어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길 건너편에서 건너오는 인사계 ‘이모 선임 하사’와 마주쳤다.

“어이, 박병장! 오늘 휴가 마치고 귀대하는 길인가?”

“아! 예! 선임 하사님! 어디 다녀오십니까?”하고 박병장, 그는 아주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오늘 교육 마치고 부대 들어가려는 길이야. 마침 잘 되었군. 안 그래도 출출한데 우리 같이 저녁이나 먹고 술도 한 잔 하고 들어가자!”

바로 박병장의 부대 인사계 담당자인 이모 선임하사였다. 오늘 그가 ‘복무교육’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때 여기서 박병장이,

‘아! 예. 그러지요.’ 하고 선뜻 대답했어야 했다. 더구나 군대 직속 선임이 저녁도 먹고, 술 한 잔 하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네, 인사계 선임인 내 덕에 20일 넘게 휴가 잘 다녀왔잖아. 오늘 술 한 잔 사라! 당연히 알아서 인사도 하고 말이야.’


사실 이 선임이 하는 말인즉, ‘고향 다녀오면서 나름 용돈도 두둑이 받았을 터, 군대 짬밥 먹은 세월이 얼마냐? 그걸 꼭 말로 해야겠냐?’

박 병장에게 넌지시 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술자리는 그만두고 당장 간단한 저녁 식사도 대접해 줄 형편이 못되었다. 안타깝게도 박병장으로서는 호주머니를 털어도 아무것도 나올 게 없는 그저 빈털터리였다. 심지어 그가 차비도 없이 겨우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더구나 이선임은 박 병장에게 당시, 20여 일 휴가증을 떼어주며 말했을 것이다.

“박 병장, 휴가 잘 다녀와라. 재미도 많이 보고…….”

그런데 정작 박병장에게 있어 그의 휴가는 실제로 어땠을까?


당시 1969년 2월, 휴가를 받아 전방 부대에서 춘천을 거쳐 그의 고향인 강화도에 어렵게 찾아갔다. 그해 유난히 눈도 많이 오고 날씨가 몹시 추웠다. 아직도 바닷가 그곳은 엄동설한 한겨울이었다.

더구나 고향에서 그를 반겨 맞아 줄 사람은 오직 연로하신 아버지뿐이었다, 그가 군대 가기 전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젊고 부지런하여 살림을 잘 꾸려가며 그런대로 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렸다. 그러나 집안의 살림꾼이었던 그가 군에 입대했으니 더구나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혼자 계시는 아버지의 어려움은 말할 수가 없었다. 막상 휴가를 나와 아버지 혼자 계시는 고향에 찾아갔을 때, 이제 연로하신 아버지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나마 병약했던 탓에 그가 입대하기 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병장 말고 형들도 있었으나 진즉에 육지로 모두 떠났고, 서로 살기가 어려운 탓인지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누구 하나 잘 보살펴 드리지 않았다. 다행히 바로 아래 막내 여동생이 결혼하여 집 근처 가까이 살고 있었다. 동생이 착한 신랑을 만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며 가며 밥이나 굶지 않도록 아버지를 돌보아 드리고 있었다.

군대에 나갔던 자식이 오랜만에 휴가를 나오면 대개 부모님들은 그간 군대에서 고생 많았다고 반겨 맞아 우선 잘 먹여줄 것이다. 그리고 귀대할 때는 나름 용돈도 두둑이 챙겨줄 것이었다.

그러나 박병장으로서는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휴가라고 나왔지만 대접받기는커녕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보살펴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장 아직도 2월, 따듯한 봄이 오기까지 추운 겨울을 지낼만한 땔나무조차 제대로 없었다.

그는 휴가 나온 첫날부터 땔나무를 위해 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 했다. 그는 20여 일의 휴가 기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산으로 올라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땔나무를 해다 놓았다.

휴가 나오던 날, 그래도 착한 여동생이 오빠가 오랜만에 휴가를 나왔다고 당시 고액권인 ‘오백 원’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 용돈마저 귀대하면서 아버지 호주머니에 넣어 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그가 휴가 기간 내내 나무를 해다 놓고 귀대하는 날, 아침에 그래도 매부가 또 오백 원을 고맙게 챙겨 주었다.


강화도를 나온 그가 전방 부대가 있는 춘천을 가려면 일단 청량리역을 거쳐 가야 했다. 그런데 그날 청량리역에서였다. 자그마한 외모의 박병장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있어 보이는 아주 체격 좋은 헌병들과 마주쳤다.

헌병 둘이서 박병장, 그의 머리가 장발이라며 뒷골목으로 데리고 갔다. 사실 휴가를 나왔지만 산에서 나무만 하다 서둘러 귀대하는 그는 머리를 깎을 사이도 없었다.

헌병은 갑자기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며 갖고 있는 소지품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소위 장발에 대한 범칙금으로 딱 한 장 있던 ‘오백 원’ 짜리 지폐를 집어가는 것이었다. 당시 ‘오백 원’은 가장 큰 고액권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그러한 일이 청량리 뒷골목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박병장으로서는 체격도 자그마한 데다 당시 헌병에게 따지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이제 돈은 떨어졌고 결국 버스마저 무임승차를 해야 했다. 차장이 중간에 표 검사를 했다. 이어 차장은 차비가 없으면 다음 정류장에서 당장 내리라고 했다. 그렇게 차장과 승강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군에 가 있던 자기 아들 생각을 했던지, 가만히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박병장의 차비를 대신 내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 아주머니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지만 고개를 들고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이곳 춘천까지 빈털터리로 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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