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의 힘

사랑의 힘

< 제2 부 > 사랑의 힘

by 청목

7. 상견례 (2)


서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가까운 어느 날!

아버지의 말씀대로 일단 만나 정식 인사를 나누는 '상견례'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였다.

우선 적당한 날을 잡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서로의 생각은 많았다. 특히 막내인 그녀에 대하여 항상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은 아버지도 그렇게 난색을 표했으니 ‘한 성질 한다’하는 어머니는 오죽하겠는가?

언제 겪어도 한 번은 겪어야 할 일, 단단히 각오를 해야 했다.


산 넘어 산이라 말이 있듯, 어떻게 일이 쉽게 풀리겠는가? 우선 일과를 마치고 부모님 편하신 날, 초저녁 시간으로 잡았다. 그리고 장소는 꽤 잘 알려진 <요리 집>으로 예약을 했다. 부모님, 특히 순정 씨 어머니께서 이곳 음식을 아주 좋아하셨다. 미리 메뉴도 어머니, 아버지 좋아하시는 입맛에 맞추어 정해 놓았다. 또한 상견례 자리인 만큼, 아늑하고 조용한 방으로 예약을 해 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었다.

박 선생과 둘이서 먼저 나와서 기다렸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두 분이 함께 들어오셨다. 둘은 의자에서 일어나 두 분을 맞았다.

모두 자리에 앉았고 박 선생은 우선 긴장도 되었을 것이고 그저 입이 마른 지 연신 컵에 물을 따라 계속 마셔댔다.

“박은성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같은 남자인 까닭에 먼저 손을 선뜻 내밀어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 민애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리고 이쪽은 어머니, 당신도 인사해요.” 하지만 어머니는 들어올 때 그저 건너다보듯 눈길을 한 번 주었을 뿐, 아예 처음부터 박 선생에게 똑바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주문한 음식이 차근차근 들어왔다. 어머니는 음식은 드실 생각도 안 하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나이가 몇이냐? 하는 일이 무엇이냐? 부모님은 계시냐? 집은 있느냐?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느냐? 끝도 없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는,

“여보! 우선 나온 요리 들면서 차근차근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당신은 지금 이 상황에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겠어요?”

“…….”

아버지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직원을 불렀다. 평소 별로 술을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그것도 '고량주'로 주문하셨다. 직원이 술을 가져오자,

“우선, 술 한 잔 따르시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 한잔해야 하지 않겠소!”

박 선생이 일어나 공손하게 술잔을 따랐다. 그러자 아버지도 잔을 들어 술을 권하자,

“저는 술을 잘 못합니다.”

“그래도 일단 잔을 받으시오.”

그는 받은 술을 몸을 돌려 입 모금만 하고는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어머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나는 이 혼사 절대로 못해요. 딸 줄 생각도 없고, 이 아이는 우리 집 막내이고 위로도 언니가 둘이나 있다오. 그런 줄 아세요.”

하고 어머니는 말을 마치자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기세였다.

“어머니, 이렇게 일어나시면 어떻게 해요! 저를 봐서라도 조금만 앉아계세요.”

민애 씨가 깜짝 놀라 일어나 어머니를 붙잡았다. 물론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서로 그저 난감할 뿐이었다.

“여보, 임자. 그래도 우리는 귀한 내 딸 민애의 부모이고 우리는 어른이요. 우선 자리에 앉으시오. 일어날 때 일어나더라도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고 일어납시다.”

하고 아버지까지 나서 금방이라도 일어나 나가시려는 어머니를 붙잡아 달래고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혔다. 아버지는 조용히 술을 한 잔을 더 따르게 하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박 군! 우리 딸, 민애의 말로는 박 군을 참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지금까지 우리 막내딸이지만

민애를 키우면서 스스로 제 할 일 잘하고, 지금 앞에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인 우리가 한 번도 언짢아해 본 일이 없었다오. 우리 두 내외에겐 그렇게 착하고 소중한 딸이라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혼인만큼 중대한 일이 또 어디 있겠소.

그러니 오늘 여기서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우리로서도 차분히 더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겠소. 박 군도 좀 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다시 잘 생각하기 바래요. 부모의 마음이 다 그런 것 아니겠소! 민애의 아비로서 그렇게밖에 다른 할 말이 없오.”

“아! 예! 아버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자! 술이나 한 잔 더 따르시게!”

박 선생은 얼른 일어나 술을 정성스럽게 따라 드렸다.

“말씀 감사합니다. 마음에 잘 새기겠습니다.”

“자! 그러면 일단 준비한 음식이 나왔으니 서로 좋은 얼굴로 천천히 식사를 합시다!”

먼저 일어나 성급하게 나가시려던 어머니도 이제 처음의 흥분을 차츰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아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셨다.

그리고 박 선생을 천천히 다시 건너다보는데 천성이 착해 보이고 그저 속 썩일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마치 자리라도 박차고 일어나 금방 나갈 기세였던 어머니도 가만히 생각해 볼수록 누구보다 생각이 깊은 막내가 또 생각하고 얼마나 그렇게 마음에 들었으면 그랬을까? 한편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남의 사위라면 모르거니와 자기 사위로는 아니라는 생각이 마음에 깊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참! 지난겨울 우리 민애가 발목을 다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박 선생이 치료를 잘해주었다고 들었어요. 그 한방 침술 솜씨가 참 대단한가 봐요!”

“아! 아닙니다. 사실은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만 일찍이 침술을 익히셔서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 치료하시는 모습을 늘 눈으로 보면서 자랐지요.”

“아, 그러니까 선친 때부터 침술을 보고 익혀 온 솜씨구만!”

“아! 예! 그런 셈이지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민애 씨도,

“박 선생님, 아버님이 6.25 전쟁 전에는 마을에 유지셨대요.”

“아, 그래요? 아버님이 참 훌륭하신 분이었던가 보군요.”

“아, 예. 생전에 한때, 그러셨지만 이미 돌아가셨고, 이제는 그저 옛날이야기이지요.”

그렇게 식사를 모두 마치고, 이야기 나누며 차도 마시고 자리를 일어나셨다.

박 선생과 민애 씨는 문 앞까지 함께 나와 택시를 잡아 드리고 어머니,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 부모님 뵙게 되어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8. 무재칠시(無財七施)


그날 부모님과 헤어져 이제 두 사람만 남았다. 두 사람이 거리로 나왔을 때,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낮아졌다. 그녀가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방울이 하나가 그녀 얼굴 위로 톡하고 떨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오늘 여기서 결정하지 않겠다!’고 하신 아버지 말씀은 결국 ‘박 선생을 사위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 자신보다 그 말씀을 함께 들은 박 선생의 심정은 어떨까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더구나 오늘 어머니는 만나자마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갈 기세였다.

아버지가 겨우 진정시켜 자리에 앉으셨지만 한마디로,

‘언감생심! 어딜 감히 들이대!’ 실제로 말씀은 그렇게 안 하셨지만 그녀 어머니의 마음은 딱 그랬을 것이다.

그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가 옆에서 보기에도 그러한데 당사자인 본인, 박 선생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의 생각이 거기에 미쳤다.


둘이서 서로의 사랑을 굳게 약속했다지만 결혼까지 잘 이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돌아보면 그녀가 스스로 자기에게 다가와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이 그녀를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서로의 사랑이 계속해서 이어 갈 수 있을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지난날 아팠던 그 시절,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그때를 눈앞에 떠올렸다.

처음 이모선임으로부터 구타당하던 날, 그리고 보안대로 끌려가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고문에 시달리고 마지막으로 전기 고문까지 받던 그때, 그 장면들이 자신의 눈앞을 생생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생각들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마치 그때의 상황을 다시 맞닥뜨린 것처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그녀가 큰 소리로,

"박 선생님!" 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머리를 흔들며 깨어나듯 다시 정신을 차렸다.

"오늘 우리 부모님 만난 일로 박 선생님 마음이 많이 언짢으시지요?"

그녀가 그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민애 씨 부모님이야 당연한 말씀이시지. 그 생각을 아주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가 그처럼 슬픈 표정을 짓는 모습을 오늘 처음 보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그의 아픈 마음을 씻고 달래줄 수 있을까? 그녀는 오직 그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무겁게 낮아지던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고 이제 마음을 굳게 정한 듯했다. 갑자기 빗방울이 두두둑 한꺼번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 그와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그를 잡아끌듯 곧장 큰길로 나왔다. 바로 다가오는 택시를 세웠다.

“기사님! 여기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가주세요!”

“아니 민애 씨, 갑자기 호텔이라니?”

“기사님! 어서 가주세요!”

택시는 그렇게 비 오는 밤거리를 쏜살같이 내달렸다.

곧이어 그리 멀지 않은 곳, 네온사인 번쩍이는 호텔 앞에 멈추어 섰다.

호텔 이름은 <初夜>였다.

‘초야라! 어쩌면 이름도 아주 잘 어울리네!’

그녀는 이제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호텔 현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히려 남자인 그가 어안이 벙벙해하며 그녀에게 끌려가다시피 따라갔다. 그는 그녀에게 온전히 붙잡혔다.

호텔은 현대식으로 아주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 깔끔했다.

“박 선생님, 전망 좋고 조용한 방으로 달라고 하세요.”

그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런 그녀의 얼굴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생님! 지금부터 아무 말씀 마시고, 제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자, 이제 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셨어요.”

그렇게 둘은 손가락을 걸었다.

“박 선생님, 지난번 제 다친 발목을 치료해 주실 때, 하신 말씀 기억나세요?

어느 선생님의 가르침, ‘무재칠시(無財七施)’에 대해서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 가운데 선생님은 배운 한방 침술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 주신다는 말씀도 해주고요. 특히 자신의 몸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일곱 가지나 된다고 하셨어요. 그 가르침에 대해 제가 그간 많이 생각해 봤어요.”

“무재칠시……?”

“네! 선생님이 지난겨울 다쳤던 제 발목을 잘 치료해 주신 것처럼요. 선생님 자신의 몸으로, 배운 의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베푸신다는 말씀을요. 오늘은 이제 제가 선생님을 위해 갚을 차례예요. 선생님 그간 얼마나 아파하셨어요. 그 아픈 마음을 제가 달래 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요?”

"오늘 일만 해도 저 때문에 선생님 마음만 아프게 해 드린 것 같아요. 이제 아무 말씀도 마세요!"

“……?”

“자! 지금 이 순간부터 선생님 아닌, 그냥 당신이에요!"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그녀 스스로도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지, 그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마음의 준비도 되었고, 당신은 저에 그러한 뜻을 그저 마음 편히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잠시 후 그녀가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오듯 뽀얀 수증기를 뒤로하고 하얀 타월을 걸친 채,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늘씬한 몸매 때문인지 아니면 조명 불빛 때문이지 그는 눈이 부셔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외치듯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렇게 둘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아주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되었다.


“아……!”

그녀는 아픈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그를 더욱 끌어당겼다. 그렇게 한때의 거센 폭풍우가 지나갔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끄윽―!”

그것은 분명히 남자의 흐느낌 소리였다.

“아니 왜요?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너무나 놀라 그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지금 울고 계시는 거예요? 아니 왜요?”

그는 지금껏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 듯 울었다. 그 울음소리는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마치 폭포수가 쏟아져 내려오듯 했다. 이제껏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어떤 슬픔의 북받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그는 아예 어깨를 들먹이면서 큰 소리로 흐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흐느낌을 넘어 소리 없는 통곡이었다.


지금 그가 울고 있다는 것, 그 통곡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는 처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어쩌면 오늘 자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마음 아픈 상처가 있었다면, 부모님을 대신하여 그가 받은 상처를 씻어주고 달래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런데 이렇게 큰소리로 통곡하듯 흐느끼는 까닭은 도대체 웬일인가?

아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그처럼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그가 통곡하듯 흐느끼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나 놀랐다. 그러나 곧이어 그녀는 그가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그 까닭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녀의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난 '20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감옥살이했던 지난날의 그 아픔과 상처' 그 모든 것을 바로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자기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한꺼번에 쏟아버리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때로 여자들의 직감적 감각, 그 예감은 틀림이 없었다. 물론 그의 아픔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의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가 그렇게 통곡함으로써 천천히 씻어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그렇게 오로지 사랑한다는 것, 그 지극함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이룩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어떤 증오나 복수로는 결코 해결될 수가 없다. 더구나 어떤 복수는 또 다른 증오를 낳을 뿐이다.

실제로 그녀는 박 선생, 그의 가슴속에 있는 지난날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가 그 아픔을 자신이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씻어줄 수 있기를 기도하듯 간절히 바랐다.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바,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속 시원하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직도 흐느끼는 그를 그녀의 따뜻한 가슴으로 멈출 때까지

안고 있었다.



9. 상견례 이후


그날 밤, 막내딸 민애 씨는 끝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에 없던 일이었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내심(內心), 끝까지 반대의 입장이었겠지만 막내딸이 한없이 착하지만 은근히 고집도 있었다. 말리면 더 엇나갈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심리다. 부모님은 이제 그쯤 해두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충분히 부모님의 뜻은 전달하였고 한편 어떻게 해서든 돌이키려 하기보다 천천히 지켜보기로 했다. 더구나 막내인 그녀 위로 아직 출가하지 않은 언니가 둘이나 있으니, 이제 부모님은 그 기대를 언니들에게 돌리기로 하였다.

얼마 후, 자연 막내와 관련 혼사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이제 아주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를 자신의 배우자로 ‘박 선생’이 아니고서는 어떤 사람 하고도 혼인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평생을 혼자 독신으로 지내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막내, 그녀의 일로 걱정하시는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큰오빠가 막내인 그녀를 불러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탁으로 큰오빠가 직접 박 선생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에 둘이 서로 만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그들은 초면이 아니었고 너무나도 잘 알고 지낸 선후배 사이였다. 그 선후배 사이라는 것은 바로 대전교도소 수감 생활 중에 그야말로 인생 선후배 사이로 만난 것이다.

당시 박 선생이 인생 선배로서 뿐만 아니라 더구나 영복이 형과도 함께 만나던 사이였다. 그는 인생 후배로서 늘, ‘박 형’이라고 부르며 서로가 아주 돈독한 사이였던 것이다. 큰오빠가 한때, 학생 운동권에 있다가 붙잡혀 대전 교도소에 있을 때 둘이서 함께 만났던 것이다.


이제 큰오빠가 두 사람의 혼사를 성사시키기 위한 부모님 설득에 적극 나섰다. 우선 부모님께 자기가 잘 알고, 이미 겪어왔던 ‘박 선생’에 대해 말씀드렸다.


“박 선생님은 제가 형님으로 모셨고, 우선 사람이 요즘 세상에 그처럼 성실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 찾기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혹 염려가 되시겠지만, 그 형은 부모님 걱정 끼칠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 혹여 부모님 생각하시기에 눈에 차지 않으셔도 걱정하지 마시고 막내가 그렇게 좋다고 하니, 못 이기는 척 허락해 주세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는 틀림없이 부모님도 ‘그러기를 참 잘했다’ 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성품이 온화하고 성실하여 무엇보다 막내한테도 잘할 것이고, 부모님께도 효도 잘할 것입니다.”


하고 확실하게 부모님을 이해시키고 설득해 주는 든든한 오빠가 옆에 있는 까닭에 부모님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박 선생에 대해 모두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큰 아들, 장남(長男)의 이야기인지라 그저 못 이기는 척, 결국 막내의 결혼을 허락하였던 것이다.


그와 같이 큰오빠가 중간에서 서로를 잘 설득하여 부모님도 한발 물러나 막내의 생각을 늦게나마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 막내 혼사에 대한 부모님의 반대가 아닌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허락과 협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장인, 장모님 연로하셨을 때, 바로 처음 그렇게 반대했던 사위, 박 선생이 장인, 장모님 두 분을 모두 모셔 와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의 건강을 정성껏 보살펴 드렸고, 아주 편안하게 막내딸, 막내 사위가 잘 모시다가 돌아가셨다.



10. 또 한 번의 어려움


처음 불교 청년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인 상담을 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항상 먼저 찾아가 털어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선배 언니가 있었다. 그 선배가 후에 이곳의 총무 집사님이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선임 선배님으로 개인적인 고민에 대한 상담도 하고 또 평소에도 따뜻하게 큰언니처럼 속에 이야기도

편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박 선생과 관련해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민애 씨 입장에서 박 선생에 관한 한 전혀 ‘이럴까, 저럴까’하는 자기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확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본인조차 딱히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에 대해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박 선생은 가장 먼저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신뢰(信賴)’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박 선생은 이미 누구와 의논이나 상담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 선배이자, 총무 집사님과 대화 역시 ‘이렇게 선택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하는 어떤 갈등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민애 씨, 본인도 이곳 포교원에 꽤 오래 몸담고 있어 왔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박 선생이 이곳 포교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들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사전 대비랄까 물론 그것까지 민애 씨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사전에 이야기해 둠으로써 박 선생과 언제든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일차적으로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인해 이곳 포교원 운영에 있어, 어떤 어려움도 없도록 하는데 하는 데 있었다. 나중에라도 ‘왜 미리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했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또 한편, 그녀와 박 선생의 결혼에 대하여 사전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결혼식 청첩장을 미리 돌려 알리는 것처럼, 이곳 포교원 총무 집사님으로 하여금 사전에 알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제 민애 씨, 그녀 입장에서 부모님께도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허락을 받은 바이고, 이제 두 사람의 앞날에 대해 굳게 약속한 마당이니, 누구에게라도 떳떳하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인 12월 19일, 이제 결혼식 하기로 날짜를 잡은 마당에 미리 이곳 포교원 총무님이자, 선배 언니에게 알려 줌으로써 서로에게 이해와 준비를 하는데 여유를 갖게 할 것이었다.


더구나 민애 씨의 입장에서는 서로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총무 집사님과 마음 편안하게 어떤 이야기라도 털어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미리 총무 집사님에게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편한 시간을 잡아 만나기로 했다. 날짜는 서로가 다른 일정이 없는 일요일 오전 시간으로 잡았다. 장소는 포교원 내 작고 조용한 모임방으로 정해 두었다. 그녀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 모임방에 차도 미리 준비해 놓고 총무 집사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조금 늦은 시간에 총무 집사님이 들어왔다.


“내가 좀 약속시간보다 늦었나 봐?” 하고 평소에 그랬듯이 밝은 얼굴로 들어왔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는걸요.”

“무슨 이야기인데 이렇게 따로 약속 시간을 잡아 만나자고 하는 거야?”

“그러게요. 총무 집사님, 다름 아니고 저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포교원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박 선생님 이야기이기도 해서요.”

“박 선생님? 아니 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누구보다 선배님께 미리 이야기를 해야겠기에 말씀드립니다. 제가 언제서부터 박 의원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어요, 저 혼자 오래 짝사랑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최근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결혼 허락을 받았어요. 제가 먼저 청혼을 한 셈이지요.”

“아! 그래? 맞아! 누가 안 그래도 ‘두 사람 사이가 보통이 아닌가 보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그저 건성 들었지.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런데 정말이었구나! 내가 생각할 때 두 사람 사이는 그럴만한 사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지. 우선 둘 사이에 나이 차이도 많고 말이야!

그런데 정말이었군! 안 그래도 확인 차, 나도 좀 물어보려고 했어. 그러니까 박 선생님과 민애 씨가 결혼을 한단 말이지∼? 놀래라! 어떻게 그런 일이……?”

선배이자 총무님은 그저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박 선생님도 그러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지?”

“아! 예, 물론 그랬지요.”

“솔직히, 그 결혼을 반대하고 싶은데 어쩌지?”

“아니, 왜요? 혹시 총무님이 저처럼 박 선생님을 좋아하시기라도 하나요?”

민애 씨는 얼굴도 예쁜 총무님이 반대한다는 말에 깜짝 놀란 듯 물었다.


“아니, 내가? 하하, 안 그래도 박 선생님이 하도 착하시니 나도 ‘짝사랑’을 한다면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지금 당장 우리 포교원에 박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려움이 많지. 포교원에 찾아오는 환우들 치료하고 돌보아 주는 일도 그렇고, 또, 박 선생님이 이곳 포교원의 시설관리를 그렇게 잘 챙겨주실 수가 없거든. 그런데 장가드셔서 살림 차려 나가시고 나면, 그 일을 누가 그리 잘 감당해 주겠어? 어떻게 하지? 그 두 사람의 결혼을 말릴 수만 있다면 말리고 싶은데 말이야! 호-호-호-!

뭐, 할 수 없지. 그래도 두 사람의 앞날이 달린 문제이니 그리 말할 수도 없고, 포교원 살림보다 두 사람 본인들의 문제가 더 소중한 일이지 않나, 그렇지?”

“총무 집사님! 그렇게 말씀해 주셔 감사합니다.

만약 총무 집사님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갓 스무 살, 한창 새파란 아가씨가 저 나이 많은 홀아비 같은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니, 그 말을 부모님이 들으시면 어떠실까? 아마도 뒤로 넘어지시겠다.’하고……!”


이렇게 나오실 줄 알았는데 민애 씨, 그녀 입장에서는 전혀 뜻밖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이제 생각이 나서 이야기인데, 은근히 박 선생님의 인기가 참 많았어요. 아마도 본인들이 직접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 테고, 박 선생님에게 은근히 호감을 갖고 있거든, 중간에서 좀, 나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넌지시 박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웬일인지 박 선생님이 한사코, 그저 손사래를 치시더라고……!


아! 그러고 보니까 민애 씨와 이미 그런 사연이 있었네! 아무튼 민애 씨가 먼저 용기 내기를 잘한 일이야.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박 선생님을 놓칠 뻔했잖아! 참, 놀랍다. 부처님 말씀대로 ‘인연(因緣)’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기는 있나 봐! 나무 관세음보살!”



11. 드디어 결혼식 날


이곳 정동 세실 극장, 낮 12시. 어제는 나라님을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오늘은 12월 19일, 드디어 신랑 박성은 군과 신부 현민애 양이 장가들고 시집가는 잔칫날이다. 말 그대로 축제의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혼인식을 총괄 지휘, 연출, 감독하시는 분은 바로 신랑의 형님이신 영복이 형님이시다.


먼저 축하객 면면을 살펴보면 신랑 측 하객은 오로지 '영복이 형' 지인들이었고, 신부 측에서는 홍제동 불교 청년 포교원 법사님을 비롯하여 그 가족들이 막내이면서 제일 먼저 시집가는 '민애 씨'를 축하해 주기 위해 자리를 가득 매웠다. 시작 처음부터 결혼식이라기보다 축하 잔칫날이었다.

딱 그 분위기였다. 사물놀이 악단까지 축하객이 많아 방청석을 가득 매웠다. 오늘은 신랑, 신부 두 사람의 혼인만이 아니라 여기 축하객으로 함께한 모든 사람들의 경사요, 축제 날이었다. 먼저 시작 전에 사물놀이 풍물 악단의 한차례 구성진 풍악 소리로 분위기를 한껏 띄었다. 그렇게 요란하던 풍물소리가 조용히 잦아들자,


이제 드디어 사회자가, “신랑, 신부 입장이요!” 하는 멘트가 있자, 우선 결혼행진곡 피아노 반주 대신 사물놀이 풍물패의 ‘신랑 신부 나가신다’, 아마도 춘향전의 사랑 노래인 듯, 두드림이 요란했다. 그때 멋진 한복 차림으로 예쁘게 단장한 신랑, 신부가 함께 걸어 들어오는데 그 걷는 모습을 눈여겨보자. 신부가 신랑의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데 신랑은 그저 사뿐사뿐, 신부가 오히려 보무도 당당하게 씩씩하게 걸어 들어온다. 그때 축하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오더라.

어디 보자. 신랑은 얼마나 좋은지 기쁨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그 모습이 마치 마냥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이 웃음 가득한 얼굴 그대로였다. 신부도 얼굴에 곱게 연지 곤지도 찍고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의 날이 아니던가.


이어 주례사 선생님의 주옥같은 인생의 조언,

“어려울 때일수록 항상, 처음 만난 듯, 처음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어졌다. 또 한 번의 사물놀이 풍물놀이로 축하 무대로 춘향이의 ‘사랑 사랑 내 사랑아!’ 한 판이 벌어졌다.


다음 2부 순서로 바로 그 아래 1층에서 피로연이 열렸다. 그곳에서 주 메뉴 한 가지 빼고는 모든 잔치 음식을 바로 포교원 총무 집사님의 지휘 아래, 포교원 가족들이 함께 솜씨를 발휘, 언제서부터 떡이며 부침이며 온갖 한다 하는 혼인잔치 음식을 준비해 와 차려 놓았다.

‘임금님 수라상’이 조금도 부럽지 아니할 만큼 거하게 잘 차렸더라!

오늘 신랑 박은성 군과 신부 현민애 양의 혼인식은 바로 ‘영복이 형님’의 지휘 감독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의 앞날을 이와 같이 축복하고 축하해 주었으니 오늘의 주인공 두 사람은 오직 행복한 가정 이루어 서로 사랑하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것이렸다.


이곳 포교원의 법사님께 주례를 부탁드렸어도 쾌히 승낙하고 해 주셨을 것이나 이미 선약이 있었던 터라 예정대로 진행하였다. 어쨌거나 포교원 가족 모두가 축복해 주는 혼인 잔치가 되었다.

오늘은 누구보다 ‘아우 박은성 씨와 현민애 양’의 백년가약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영복이 형님은 예식장 마련에서부터 전체적인 순서 기획, 하객 동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생이 직접 연출을 맡아 아주 훌륭한 결혼식이 되도록 하였다.


신랑 신부는 모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마치 옛 전통 방식대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둘이서 꾸민 신혼살림은 처음이라 부족한 것이 많을 것이지만 알뜰하게 살림을 차리고 박 선생은 새로운 가정을 잘 이끌어가기 위해 동분서주 열심히 뛰었다.



12. 새로운 출발


그와 같이 그들 신혼부부는 영복이 형님과 포교원 가족들의 도움과 축하 속에 멋진 혼례식을 무사히 마쳤다. 결혼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막 자녀를 낳고 기르던 때였다.


본래 한의원 개업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격 면허'가 있어야 했다. 그가 아무리 한방침술이 뛰어나고, 환자를 얼마든지 잘 치료하고 잘 돌보아 줄 수 있다 해도 한방에 대한 ‘자격 면허’가 없으니 '한의원' 개설은 할 수는 없었다.

박 선생으로서는 그저 종전대로 일반 한의원에 나가 침술사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어느 날, 박은성 씨는 영복이 형님을 만났다. 그리고 본인이 한의사 '자격 면허'가 없어 한의원을 개설할 수가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듣고 영복이 형님이 이런 제안을 했다.

박 은성 씨는 이미 나이도 있고 하려 해도 할 수도 없지만, 아내 현 민애씨는 아직 나이도 젊은 데다, 서울대졸업생으로 충분한 수학 능력이 되니 아내에게 권해보도록 조언했다.

박 은성 씨는 선생의 그 말씀을 듣고 무릎을 쳤다. 곧바로 아내 현민애씨에게 한의대에 지원하여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 자격증’을 딸 것을 권했다. 아내도 그 말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직은 어린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육아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박 은성 씨가 육아 문제는 이제부터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한의사 대학 입시 공부를 시작하여, 육아 등 어려움도 많았으나, 모 한의대에 당당히 입학시험에 합격하였고 주부 겸 대학생이 되었다.


본래 S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만큼 두뇌가 명석하여 그와 같이 한의대를 합격하고 또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때까지 박 선생이 대신 집에서 두 아이의 육아(育兒)를 잘 감당하였다.

아내 민애 씨가 한의대를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육아 등, 수많은 어려움도 극복하고 졸업하여 한의사 자격증을 따고 모처에 꿈에 그렸던 한의원을 처음 개업하게 되었다. 한의원, 원장은 말할 것도 없이 아내가 원장을 맡았고, 박 선생은 숱한 한방 경험을 쌓은 노하우로 아내를 도와 박 선생의 소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격 면허’가 있는 ‘한의원’을 열었던 것이다. 이제야 박 선생 평생의 한 꿈을 이룬 셈이었다. 그 사이 자녀들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

한편 신혼살림을 시작하고서 우연찮게 H 건설사 중역으로 있던 K이사라는 분을 만나게 된다. 그는 나이 들면서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큰 병원에서조차 치료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와 같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 우연히 박 선생의 소문을 듣고 만나게 되었다. 그는 어렵게 박 선생을 찾아왔고, 일이 잘 되려고 그의 한방 침술과 한약 처방으로 놀랍고 신통하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다. 다시 건강을 되찾은 K 이사는 본래 H 건설사 자재담당 이사로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고마운 박 선생을 돕고자 했다. 박 선생이 본래 건축기사 자격증이 있는 데다 나름 건축 감독 경력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박 선생에게 제안하기를 좋은 건축 자재를 적극 지원해 줄 테니 건축 사업을 시작해 보도록 권했다. 박 선생으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집 짓는 건축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우선 아무 자본금이 없어 시작을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살게 되어있는 것 같다. 처음 건축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야 하는 건축자재를 지원해 주겠다고 하니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그것도 모 건설사의 건축 자재는 가격도 높은 고(高) 품질로 인정받는 건축 자재를 얼마든지 지원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 셈이었다. 당시 80년대 말에 이어 90년대 초는 해외 수출 역시 크게 호황을 이루었고, 국내적으로는 주택 건설 붐이 일어나 짓기가 바쁘게 분양이 되었다. 더구나 좋은 건축자재를 공급받아 꼼꼼한 그의 건축 기술로 집을 짓기만 하면 잘 지은 집으로 소문이나 분양 또한 잘 되었다. 그와 같이 건축 사업이 잘되어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잡아가게 되었다. 당시 허름한 고 가옥의 땅을 사서 거기에 다세대 재건축을 하여 지금의 멋진 주택도 마련하였다.


그리고 완공한 건물 2층에 드디어 간판을 새로 걸고 모 한의원으로 이전 개업하였다. 그 사이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고, 항상 옆에서 박 선생의 도움을 받으며 한의원으로서 제대로 자리 잡아가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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