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 부 > 사랑의 힘
3. 첫 만남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여럿이서 사회 봉사 활동을 나갔을 때였다. 강추위에 밤사이 길이 꽁꽁 얼어 있었다. 그런 길을 조심, 또 조심하며 걸었지만 가파른 빙판길에 그녀가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그녀는 왼쪽 발목을 접질리며 크게 다치고 말았다. 다친 발목은 금세 퉁퉁 부어올랐고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한 발짝 옮기는 것조차 어려웠다. 다행히 그날 옆에 동료들이 함께 있어 간신히 부축을 받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는 처음 시내의 일반 정형외과 병원으로 가서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녀가 먼저 떠올린 것은 가까이 포교원에 있을 박 선생이었다. 박 선생, 그를 찾아가면 틀림없이 누구보다 치료를 잘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다친 발목을 치료하기 위해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박 선생을 찾아갔다. 그녀가 발목을 다친 것은 무척 안 된 일이지만 어쩌면 멀리서만 지켜보던 박 선생을 아주 가까이서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가까이서 마주하고 만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선생은 그녀의 다친 발목을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 마치 가족인 막냇동생이나 딸에게 이야기하듯,
“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다쳤어요? 고생 좀 하겠네!” 하고 아주 따뜻한 말로 먼저 위로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맥을 한참이나 짚어 본 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발목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우선 먼저 넘어지며 틀어진 발목을 아주 익숙한 솜씨로 손쉽게 바로잡아 주었다. 다음 침을 놓고, 뜸을 떠 울혈이 된 피를 뽑아냈다. 그리고 차츰 시간이 지나며 그렇게 견딜 수 없게 욱신욱신 아프던 통증도 점차 가라앉고 차차 부기도 빠졌다.
그녀는 박 선생이 마치 자기를 귀하신 분, 보살피듯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 회복될 때까지 몇 번이고 진료를 받으면서 차츰, 발목을 다친 것이 계기가 되어 곧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깝고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이번 일을 통해 박 선생에 대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까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그저 멀리서만 지켜보다 둘이서 편안한 마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박 선생에 대해,
‘아, 세상에 아직도 이런 사람이 다 있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이다’하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좋은 호감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박 선생이 그녀에게만 특별히 잘 대해주는 아니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그와 같이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일이 아주 작은 일이 어떤 계기가 되어 큰일로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가까이서 가만히 지켜보며
‘참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번 일로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꽤 오랫동안 발목 치료를 하는 가운데 이제는 서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들이 좀 뜸하고 시간이 한가해져서 그녀는 넌지시,
“박 선생님은 참, 한 결 같이 정성을 다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정성을 다하긴 뭘……!”
“아니에요.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그러세요.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보였나? 우선 내가 감옥에 오래 있었어요. 거기다 고문으로 몸을 많이 다쳤거든. 정말, 내 몸이 그렇게 아파 보니까 아픈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나름 잘 헤아릴 수 있게 되었어요.”
“아! 그래요.”
“더구나 그 아픈 상처를 직접 내 손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내가 아픈 내 몸에 침을 놓았어요.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스스로 침을 놓았다고요?”
“그렇지, 내 손으로.”
“침이 있었나요?”
“물론 감옥에 침이 있을 턱이 없지. 침도 우리가 직접 만들었어요.”
“침을 만들어요? 어떻게요?”
“군에는 통신용으로 전화 ‘삐삐 선’이라는 게 있거든, 거기 비닐 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 가느다란 강철심이 있어요. 그것을 짧게 자르고, 한쪽을 갈아서 사제 침을 만들었어요.”
“아! 감옥에 계시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철심을 자르고, 갈아서 만든 침으로 그렇게 아픈 곳의 통증을 스스로 치료하였을까요?”
“뭐, 그런 일이 많았지. 나중에는 그 안에서 다쳐서 오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아픈 사람이 생기면 치료도 해주고…….”
“아! 그렇게 다른 사람, 동료들까지요?”
그녀는 얼마 전, 법사님 강독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마음에 새기기를 우선 ‘자기 마음의 다스림’과 다른 또 하나는 ‘이웃에 대한 나눔’이라는 말씀을 실천하고자 했다. 우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쉽지 않았고, 더구나 '이웃을 보살피고 끊임없이 베풀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박 선생님이야말로 자신의 몸으로 남에게 항상 베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지어 감옥에 있으면서도 남을 위해 그렇게 스스로 실천하셨군요. 감옥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워요.”
그녀의 말에 박 선생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수감 생활 중에 말할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특히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처음 갔을 때, 아픈 몸으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거기서 ‘영복이 형’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처음 거기서 그 형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온전히 살아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 선생님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는 말씀이세요?”
“그래요. 그때 우보 형님이 가만히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생각하길, ‘이 친구 그대로 놔두었다는 시름시름 앓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겠군. 어떻게 해서든 우선 살려놓고 보아야겠다.’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가 봐요. 그때는 실제로 거의 죽을 만큼 아팠으니까,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밤새도록 아파서 잠을 못 이루고 끙끙대고 앓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니까……!”
“아! 감옥에서요?”
“우리가 만난 지, 사흘 밤인가, 하여간 서로 만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영복이 형이 나를 불러요, 우리 단둘 이만 있을 때였어요.
‘박 병장! 오늘부터 너와 나, 우리가 서로 의형제(義兄弟)를 맺자! 어떠냐?’
‘형님, 동생 하는 의형제를 맺는다고요? 그러면 저야 고맙지요.’
‘그래, 그러면 내가 연장자이니 ‘형님’이고, 너는 ‘아우’다. 앞으로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라!’
바로 영복이 형님의 그 말씀이 그때 나를 살린 거예요. 그 살벌한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영복이 형님’은 내게 그렇게 죽지 않고 버티고 살 수 있게 한, 힘이 되어주었어요. 형님의 그 말씀이 나에게 희망과 격려가 되어준 것이지. 사람이 사람에게 기댈 수가 있고, 작은 희망이라도 그 희망이 있으면 ‘사람과 희망’에 기대어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내고 버티며 살 수 있거든.”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영복이 형님은 그렇게 옆에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에게 늘 희망과 격려를 해주셨거든.”
“그 선생님은 감옥 안에서도 그렇게 하셨군요. 놀라워라! 정말 대단하신 형님이세요.”
“감옥에서 그렇게 만난 고맙고 훌륭한 분들이 참, 많았어요. 그 가운데 먼저 나에게 침술, 한의학을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이구영 선생’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한테 들은 말씀 가운데 ‘무재칠시(無財七施)’
라는 가르침이 있어요.”
“선생님, ‘무재칠시…’라니요?”
“그러니까 자기가 아무 재물이 없이도 오직 자신의 몸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일곱 가지나 된다고 하시면서 그 가운데 한방 침술, 내가 배우고 익힌 침술을 통해 아픈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내 몸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라고…….”
“선생님, 우리가 ‘감옥’하면 그저 죄(罪) 지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다투고 아주 무서운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박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복이 형님'은 친동생처럼 돌봐 주시고, 이구영 선생님은 한방 침술을 가르쳐 주시고, 수감 생활을 하시면서도 참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셨군요.”
“그게 다, 내가 하려고 해서 배웠다기보다 영복이 형님이 항상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틈만 나면 역사 이야기, 매일 시간을 정해 영어까지 가르쳐 주셨거든.”
“이제껏 감옥이 그저 두렵고 무서운 곳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오히려 바깥 사회에서도 하기 어려운 가르치고 배우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그처럼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요.”
박 선생이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나, 그가 하는 어떤 일에도 늘 정성을 다하고 한결같았다. 그의 따뜻한 마음 씀, 그러한 인간적인 모습에 그녀는 자꾸만 마음이 끌리고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내가 이제껏 찾고자 했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 박 선생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세상에는 저와 같이 참 좋은 사람도 있구나! 더구나 저 사람은 감옥에 가서 그렇게 오랫동안 있다가 나온 사람인데 어떻게 저와 같이 ‘선(善)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감옥에서 지내다 보면 범죄도 더 지능적으로 하게 되고, 때로는 그 안에서 폭력이 난무하여 다치기도 할 것인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와 같을까?
아무리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혹여 내 마음이 혹하여 내 눈앞을 가려 제대로 못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녀가 옆에서 가만히 박 선생을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무엇보다 사람이 참, 선(善) 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아! 저와 같은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은 사람 아닐까?’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민애 씨, 자신도 모르게 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생각, 어떤 용기가 일어났다고 해도 그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을 잡고, 정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났는지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때로 그와 같이 용감해질 수가 있다는 것에 그녀 자신도 놀라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