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내려 날씨는 오랜만에 선선한 가을 날씨였다.
아침 일찍부터 진주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거리가 멀어 일단 대중교통인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 버스 전용 차로를 이용하여 거의 막힘없이
마치 물 흐르듯 빠르게 내 달렸다. 아직 푸르름이 그대로인 아름다운 산야를 차창
밖으로 내다볼 수 있는 쾌적한 여행이었다.
중간에 '금산 인삼 휴게소 '에 들러 간단하게 커피 한잔하고 버스에 올랐다.
어느덧 버스는 전혀 지루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벌써 목적지 진주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초행길인지라 일단 택시를 타고 약속한 <진주 신문사>에 찾아갔다.
신문사를 겨우 찾아 올라가니 대표님은 친절하게 차를 대접해 주며, 미리 수소문을
해서 ‘김장하 어른’과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정 모' 씨의 연락처를 내게 알려주었다.
전화를 하니 지금은 출장을 나와 있어 돌아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곳은 진주 시청 앞이어서 깨끗한 식당이 많았다.
한 식당으로 들어가 돌솥비빔밥을 주문했다. 음식은 깔끔했고 맛도 그만하면 좋았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길 너 편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드디어 전화 통화를 했던 '정 모' 씨가 들어왔다. 연극단 대표님이라 그런지 키도
훌쩍 크고 인물도 훤했다. 인사를 나누고 준비해 온 책을 건네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났지만 서로가 ‘김장하' 선생과 ‘문형배' 재판관에 대한 상호 존경과 호감을
갖고 있는 터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오랫동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좀 더 일찍 서로 이야기가 되었으면 김장하 어른을 직접 만나 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점심 식사도 같이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쉽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그렇지만 일단 가져온 책을 잘 전해 드리고, 다음에 진주에 내려오는 기회가
있으면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약속도 해주었다.
일단 목적한바 책은 잘 전달되었고, 그분과 헤어져 우리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남강, 그리고 논개의 이야기가 담긴 촉석루를 탐방하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은 친절하게 그곳에 대해 안내까지 해주며 좋은 관광이 되도록 배려했다.
진주시는 도로, 가로수, 정원수 등, 가지런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잘 다듬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발길 닿는 곳마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아마도 이곳 시장님을 비롯 시청과 시민들이 모두 서로 화합하여 시정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국내 어느 곳을 갔을 때보다 이곳 '진주(晉州)'시, 보석 '진주(珍珠)'와는 그 뜻이 다를
것이나, 그 이름대로 좋은 인상을 주었다.
촉석루 성곽, 망루, 특히 파란 하늘 속에 붉은 백일홍이 굳은 절개를 지키듯 피어 있고,
석류 등 정원수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사당의 논개 영정은 아름다움을 넘어 어떤 기개와 또한 애절함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촉석루에서 남강을 굽어보며 생각했다. '임진왜란' 당시 연약한 한 여인, 논개는
어떻게 왜장의 허리를 끌어안고 절벽 아래 남강에 몸을 던질 수 있었을까?
절박한 당시의 상황을 눈앞에 다시 그려보니 그저 마음은 가라앉고 한없이 숙연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된 것은 물론 논개를 기리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이곳 진주에 찾아와 남강 촉석루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서슴없이 몸을 던진 논개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 먼 옛날에도 그랬고, 이곳 진주는 남강을 비롯,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또한 이곳 진주에 ‘김장하 선생’처럼 여전히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고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