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찬하다
‘솔찬하다’, ‘꽤 많다’의 뜻을 가진 단어(방언)를 고등학교 학창 시절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정확히는 ‘솔찬히’로 들었다. 역사 선생님이니 당연히 ‘한국 역사’든 ‘세계 역사’든 역사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수도 없이 일깨웠을 테지만 내가 지금까지 그 선생님으로부터 기억하고 있는 것은
‘솔찬하다’는 그 단어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등학교 때 유일하게 즐겁고 참 재미있었던 시간이 바로 그 선생님의 역사 수업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은 그 단어 하나뿐인데도 말이다. 지금도 나이 지긋하신
당시 선생님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단어로 기억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 단어만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평생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은 유일하게 즐겁고
재미있는 수업이었고, 선생님은 특히 어떤 점을 강조하거나 ‘많고 크다’라는 뜻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그 단어를 썼다는 점이다.
누군가 '그 역사 선생님은 ‘솔찬하다’만 가르쳤구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중학생 시절, 사회과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선생님은 당시 버스로 출퇴근을 하셨고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입석' 시내버스, 차비가 2-3배 차이가 나는 '좌석' 시외버스로 구분되던 때였다.
선생님은 늘 좌석 버스로 출퇴근을 하셨다. 어느 날 아침, 기다리던 좌석버스가 왔고, 막 버스에 오르는데
거기 일부 학생들도 뒤따라 줄을 섰을 것이다. 그때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한 친구가 좌석버스에 오르는
그 친구들에게,
“너 네 학교 가서 차비 값 하냐?” 하고 묻더란다.
물론 그 이야기는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건넨 이야기이지만 선생님은 그날 출근하여 우리들에게,
“내가 학교에서 너희들을 가르칠 때, 그 ‘차비 값’을 하는지 되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그 시간에도 선생님은 ‘사회과 지리’를 전공하신 선생님이니 그와 관련 많은 지식을 전달해 주셨을
테지만, 내가 지금까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당시 그 ‘차비 값’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그 ‘차비 값’만 가르쳤다는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그리고 특히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선생님이 읽은 책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그 가운데 『아라비안나이트』 <사십 인의 도둑>에서 '열려라 참깨!'라는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그때부터 자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책이 귀하던 때인지라 한 친구가 재미있는
책을 가져오면 아이들은 서로 그 책을 빌려 보려고 알랑방귀를 뀌곤 했다. 그때 그 친구가 제안한 것은
자기가 교실 당번인데,
“오늘 당번을 대신해 주면 그 책을 빌려주겠다.”라고 제안했다. 그 당번 활동이라는 것이 친구들을 위해
우물에서 물도 떠와야 하고 무엇보다 체육시간이면 친구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나갈 때 교실을 지키기도
했다. 자연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제풀에 나가떨어졌고, 유일하게 내가 남아 그 책을 빌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책은 『세계 명작 동화』였고, 나는 그 책을 밤을 새워 가며 읽었다.
4학년 당시 담임 선생님이 틈만 나면 책 읽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까닭에 내가 친구의 당번 활동을
대신하면서까지 책을 좋아할 수 있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훌륭한 지식을 가르쳐 학생들이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시험문제의 정답을
쓰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사실은 선생님의 어떤 이야기, 어떤 한마디가 우리 인생에 있어 훨씬 가치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