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내외가 결혼하고 여러 해가 지나도 아이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어쩌다 넌지시 언제 아기를 갖겠느냐고 물으면, 아들 대답이 '우선 승진도 해야 하고, 또 내 집 마련도 해야지요' 하고 대답했다.
딴은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어서 우리 내외는 차분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저희들도 나름 애쓰고 노력하여, 어느 사이 아들이 평소에 이야기 한대로 이제 승진도 하였고, 거기다 둘이서 열심히 절약하고 모아 나름 내 집 마련도 하였다. 그런데도 아직 아무 소식이 없자, 가만히 아버지인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들과 나 사이, 우리 부자지간의 관계,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숨은 이야기가 있다. 지난날의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아들이 자기의 자녀를 갖고자 할 때,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뒤돌아 보며 자녀를 갖는 일에 있어, 자기가
어떻게 자라왔는가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과연 자신의 2세 아이를 가질 것인가, 아예 갖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 무엇보다 그 어린 시절 가운데
특히, 아버지였던 나와 자식이었던 아들, 즉 부자관계가 어떠하였는지를 가장 먼저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 아버지였던 나와 자식의 관계는 어떠하였을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어린 시절 아이들, 아들이고 딸이고, 당연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오직 사랑과 귀여움 받으며 잘 자라왔다. 그리고 어느 만큼 자라서 아들을 먼저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아마도 외할머니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고, 할아버지께서도 당시, 하나뿐인 손자의 말이라면 무엇이라도 다 들어주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목욕탕엘 갔다. 아마도 할머니가 다 씻겨 주었을 것이고 목욕이 끝나고 나오면 할아버지는 아마도,
"시원한 것, 뭐 마실련?"하고 당연히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꺼내 왔을 것이다. 늘 그래왔을 터였다.
그리고 이제 어느 만큼 자라서, 아직은 어린아이지만 엄마, 아빠가 있는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얼마후 부자간에 목욕탕에 둘이서 같이 갔다.
처음으로
아들, 어린 그 시절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아들은
연두색 바나나 우유 하나
들고 서서
나를 기다렸다
아버지였던 나는
혹여 '다산 선생'
'근검절약'*이라도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놈아, 집에 가서
찬물 마셔!"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아들이 군대 가서
제대할 무렵
그것도 '설명절'즈음
마지막
휴가 나온 아들
"아버지, 사우나
같이 가시지요!"
우리 부자(父子) 사이
언제 사우나를
함께 해보았던가
서로 정답게
등 밀어주며 사우나 마치고
먼저 나온 아들
시원한 음료수
두 병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저가 어린 시절
'바나나 우유'
사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아니, 내가 뭐라고
했는데?"
아들은 그때까지
그 말을 잊지 않고
"이놈아! 집에 가서
찬물 마셔"
하셨지요